2004 여름 뉴저지, 뉴욕

2011. 12. 26. 23:12북미

 

 

 

남편이 여름휴가를 맞춰 토론토로 날아왔다.

 

아이들과 셋이서만 지내다가 네식구가 다 모이니 어디 휴가여행을 가자고 의논하여 정한곳이 전에

 

살았던 미국 뉴저지와 뉴욕이었다.

 

추억도 더듬고 아이들에게도 뉴욕 구경도 시켜주고...  아이들이 어릴 때여서 뉴저지나 뉴욕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않았다. 심지어 둘째녀석은 자기도 미국에 함께 살았냐고 물을 정도이니.

 

뉴저지엔 한인타운이 있으니 준비를 많이 해갈 필요도 없겠고 그저 쿨러와 옷가지, 수영복만 챙겨서 

 

룰루랄라 여행을 떠났다.

 

토론토 ( 정확히 말하면 토론토 북쪽 노스욕 )에서 미국 뉴욕 맨하탄까지는 자동차로 약 10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다. 

 

우리 가족이 1997년 여름에서 1999년 이른봄까지 살았으니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겠지

 

하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뉴욕에 입성했다.

 

확실히 뭐든지 여유있는 캐나다와 달리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미국 대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우선 자동차부터 스피드도 다르고 운전도 아주 거칠게 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전에 미국에 살았을 때도 뉴저지나 펜실배니아주와 달리 뉴욕주에만 들어서면 운전자들이 훨씬 운전을

 

거칠게 한다고 느꼈는데 하물며 캐나다에 있다오니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맨하탄 시내에 호텔을 정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자연사박물관을 우선 구경했다.

 

전에 여러번 가본 곳이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다시 방문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센트랄파크와 락펠러센터, 트럼프타워, 소호 지역과 챠이나 타운, 한인타운에선 한식으로 식사도 하고

 

유명한 5th Avenue 도 거닐었다. 물론 쇼핑을 한건 아니지만...

 

아이들한테 남편이 근무했던 실험실도 보여주고 ( 물론 실내까지 들어간건 아니지만 ) 맨하탄의 밤거리도

 

돌아다녀봤다. 미국에 살았을 때도 아이들이 어려서 맨하탄의 밤거리를 걸어서 돌아다녀보진 못했는데

 

이번에 못해본걸 다해볼 요량으로 비싼 호텔비를 감수하고 번화한 곳에 숙소를 정했던 것이다.

 

다음날엔 여름에 몇번가서 즐겼던 롱아일랜드의 롱비치에 가서 넓은 해변과 바다를 만끽했다.

 

토론토에서는 바다처럼 넓은 온타리오 호수의 비치에서 바다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는 있었지만 레알

 

바다는 아니었으므로 정말 짠물 바다를, 수평선을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롱비치에서

 

 

대서양의 바닷바람을 한껏 즐기고 전에 살던 동네인 뉴저지로 향했다. 

 

우리 동네도 돌아보고, 큰애가 다녔던 포트리스쿨도 가보고, 당시 돈이 아까워 자주 가진 못했지만

 

너무 맛있었던 팰리사이드파크의 중국음식점에도 가보고, 아들녀석 좋아하는 식스플랙 사파리도 가자며

 

계획이 창창했다.

 

그런데....

 

원래 난 차안이나 비행기에서 잘 못자는 편인데 그날따라 전날 잠을 푹자지못해 피곤해서 잠깐만 졸고

 

일어날테니 혼자서 알아서 잘가봐 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사실 남편이 워낙 길치라서 남편이 운전하면

 

손에서 지도를 놓지않고 길안내를 하지 혼자 자는적이 거의 없는데 일이 터지려니 하필 그날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엄청난 소리에 혼비백산 잠이 깨고 보니 남편은 당황해서 정신이 없고 뒷좌석에 잠들어있던 아이들도

 

놀라서 울지도 못하고 눈만 껌뻑대고 있었다.

 

차사고였다.....  우리차가 앞차를 받아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된거야 하니 하이웨이여서 시속 100Km 정도로 달리다가 씹고있던 껌을 뱉으려고 잠깐 휴지를

 

찾느라 고개를 숙였는데 그 짧은 순간에 거짓말처럼 길이 갑자기 막히기 시작한 것이었단다.

 

멀리 보이던 앞차가 고개를 드니 갑자기 바로 코 앞에...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때가 늦어 그대로

 

앞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하필 그때 내가 잠이 들고 하필 그때 껌을 뱉고 싶었던건지...  사고가 나려면

 

평소에 일어나지않는 일이 몇가지 겹쳐서 그렇게 되나보다.

 

완벽한 우리 과실이었다. 남편은 우리 가족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친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앞차로

 

가서 미안하다, 우리 잘못이니 보험처리해서 보상해주겠다, 다친데 없느냐 묻고 사과를 하고 복잡한

 

하이웨이이니 차를 갓길로 빼고 경찰과 견인차를 기다리지자고 했는데 링컨 타운카의 그 운전자는 들은

 

체도 하지않고 무조건 경찰만 기다리겠다고 했다.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운전을 했고 뒷좌석의

 

사람들은 백인 두명이었다.

 

앞차는 범퍼가 주저앉고 뒷쪽이 찌그러졌지만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고 우리차는 본넷이 완전히 우그러져

 

몰골이 형편없었다.

 

난 순간 자동차 보험이 걱정되었다. 토론토에서 자동차 보험은 내이름으로만 들어있어 남편이 운전하게

 

밝혀지면 혹시 보험회사에서 보험처리를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남편한테 앞차에서 잘 모르니

 

운전석에 내가 앉아있겠다고 했다.

 

좀 있으니 경찰이 왔다. 경찰은 먼저 앞차에 가서 조사를 하고 하이웨이에서 교통방해를 했으니 티켓을

 

주겠다고 해서 앞차의 운전자가 억울해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게 차 빼놓자니깐...

 

우리한테 오더니 앞차의 목격자가 운전을 한건 남자인것 같다고 했다는데 정말 내가 운전을 했는지

 

물었다. 난 무척 떨렸지만 침착하게 내가 했다고 얘기했다. 경찰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10살짜리

 

아들아이한테 엄마가 운전했냐고 물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어린 아들녀석은

 

거짓말도 못하겠고 사실대로 말하면 그것도 큰일일 것 같고 거의 울지경이었다.

 

난 경찰한테 작은 아이는 영어를 못한다고 둘러댔고 경찰은 큰 아이한테 질문을 하려고 아이한테

 

차에서 잠시 내리라고 했다. 순간 난 아이한테 얼른 한국말로 엄마가 운전한거다 안그러면 보험도

 

안되고 아빠한테 문제 생겨 하고 잽싸게 주의를 주었다.

 

다행히도 경찰이 큰아이의 증언 (?)을 받아들이고 조서를 마쳤다. 보험회사에 전화하니 가능만 하다면

 

캐나다로 차를 몰고와야 처리가 편하지 미국에서 사고수습을 하려면 비용도 더들고 골치가 아파진다며

 

정비소에 물어보고 웬만하면 돌아오라고 했다.

 

견인차가 오고 견인한 후  AAA 회원이니 연락하여 무료 견인 서비스가 되도록 처리하고 정비소 직원

 

한테 점검을 시켜 큰 지장이 없으면 아는 정비소에 가서 수리하겠다고 얘기하고 얼른 한인타운으로 갔다.

 

한인 정비소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다시 점검을 하니 겉모습이 망가진 것에 비하면 상태는 괜찮으니

 

차가 과열되지않게 천천히 운전하고 자주 쉬면서 가고 에어콘도 가능하면 키지말고 조심해서 가면 괜찮

 

겠다고 친절하게 봐주셨다. 너무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다.

 

보험처리 때문에 아이들한테 거짓말을 시킨게 너무 미안했다. 우린 아이들한테 상황을 알아듣게 설명

 

해주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모든 여행 계획을 접고 토론토로 귀환하는데 평소 같으면 하루 코스이지만 천천히 운전해야하니 이틀에

 

걸쳐서 돌아오기로 했다. 길에서 지나치는 차마다 우리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듯이 본넷이 형편없이 쭈그러지고 범퍼도 다 내려앉아 외관상으로는 당장 무슨일이 터질 것 같이

 

위험해보이는 차에 아이들까지 태우고 가는 우리가 이상해보일 수 밖에.

 

어느정도 마음도 가라앉고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기야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를 어떻게 공짜로 보여주냐... 내가 모자 들고 나가 1불씩 걷을까...ㅎㅎ

 

 

                                  이렇게 멀쩡했던 차였는데....

 

 

미국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을 때도 우리 여권엔 관심도 없고 괜찮냐, 정말 운전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토론토 집에 돌아와 정비소에 차를 맡기니 수리 견적이 어마어마 했다.

 

여름휴가가 이렇게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