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미여행 1 - 페루 리마, 푸노 첫날

2011. 12. 29. 19:40남미여행

시간이 촉박했다.

남편이나 난 충분한 일정을 소화해내기가 불가능했으므로 토론토 일정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모든 것을 속성으로 해결해버렸다.

딸아이의 학교에서 시간을 좀 더 내주었어야하나 비정한 (?) 엄마는 과감히 외면을 했다.

그리고 남미여행의 핵심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를 제외시키는 과감한 결단도 해냈다.

원래 꼭 보고 싶었던 마추픽추와 우유니만 확실히 챙기자는게 내 속셈이었다.

듣고싶은 것만 , 들리는 것만 듣고 하고싶은 말만 무척 간결하게 해버리는 그것도

안되면 단어만 대충 조합하는 신기로운  내 식의 짧은 영어로도 여행이 가능한 것은

아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라는 적절한 상황의 이용을 가능케하는 뻔뻔함이 큰 몫을 차지한다.

 

뭐 내게 문법에 맞게 세련된 영어를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스페인어는 단지 감사합니다 한마디 밖에 모르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실천하며 다녔다.

그나마 남미 일정은 열흘 조금 더 되는 짧은 기간이고 미리 여행사들을 예약하고 갔으니까,

또 운이 좋았으니까 가능했다.

이번 우리 여행은 패키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여행도 아니고 적절히

믹스한 형태라고 해둘까..

원래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배낭여행만 진정한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생하며 보고 얻어낸 것이 더 값지긴 하겠지.

 

 

 

늦은밤에 리마에 도착했다.

무언가 두근두근하면서도 얼떨떨...

짐을 찾아 게이트를 통과하니 내이름은 보이지않고 김혁영이라는 피켓이 보인다.

한국인 이름이 있네 했더니 남편이 아무래도 너같아 한다.

하- 그래 내이름이었다. 영문 이름을 제멋대로 읽은거다.한인 가이드가 마중나온더니...

한국어는 커녕 영어도 못하는 페루인이 핸드폰을 건넨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나오니 호텔에서 만나자는

한국인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일단은 안심이 되어 차에 몸을 맡긴다.

차창밖으로 처음 만난 리마는 한마디로 놀라웠다.황량한 거리, 지저분하고 낡은

건물들, 가난한 나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좁고 어두운 길을 한참을 달려 겨우 도착한 호텔에서 만난 한국인은 40대 초중반 쯤으로 보이는 페루

현지 한인 여행사 책임자였다. 그는 우리 일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금방 가버렸다.

추석 모임이 있다면서...

 

방은 마음에 들지않았다. 냄새가 퀴퀴하고 추웠다.

뭐 불평할 새도 없이 습기가 한기로 바뀌어 기분나쁜 추위를 느끼며 페루의 첫밤을 맞이했다.

 

 

9월22일 수요일

 

자는둥 마는둥 아침을 맞이하고 아침식사후 다시 그 한인을 만났다.

리마에 행사가 있어 호텔 잡기가 힘들었다는 핑계를 들으며 다시 공항으로 갔다.

리마 시내 건물은 ( 물론 공항으로 이동하며 본거니 주로 외곽이었겠지만 ) 폭격을

맞은 듯 쓰러져가고 옛날  우리 시골에서 보던 커다란 누렁이 개들이 길을 활보하고 있다.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너무 낡고 더럽고 공기도 매캐했다. 매연인지...

 

리마 --> 쿠스코 ( 약 40분 정차 ) -->  훌리아카 ( Juliaca ),   란 페루 ( Lan- Peru ) 항공이용

 

잠시 정차한거 까지 합해서 약 두시간 반 안되게 걸려 도착한 훌리아카 공항은 어찌나

작은지 시골 버스터미널만도 못해보였다. 여자 화장실은 단 두칸 밖에 없어 줄이 끝이 없다.

여기 픽업나온 사람들도 거의 영어를 못했다. 흐음 나도 스페인어를 못하니까 뭐 흉이랄 건 없지만

좀 많이 불편했다.

다소 불안했지만 어쨌든 그쪽에서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픽업버스엔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한가득 앉아 있고 그중엔 60대를 훌쩍 넘겨보이는

할머니들도 참 많아 보였다.

일본인 여행객들은 자신들을 인솔한 일본어 가이드를 대동하고 아예 대형버스 한대를 독차지했고

우린 미니버스에 짐을 실었다.

한시간 가량 황량한 벌판과 산지를 달려 푸노 ( Puno )에 도착했다.

 

 

                                시골  버스터미널 만큼 작은 훌리아카 공항

 

                          푸노로 가는 길 - 황량한 들판만 펼쳐져 있다

                     판자촌 같은 낡은 주택가가 언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푸노 시내 초입

 

푸노는 작고 황량한 도시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보잘 것없는 누런 잡초가 듬성듬성

뒤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해발 약 4000미터의 고지대이다.

좁은 골목들을 돌아 이리저리 호텔들에서 내려준다. 마침내 우리 차례.

또 어제처럼 처음 예약한 이름과 다른 호텔.

다시한번 물어보고 내렸다. 다행히 이번 호텔은 좀 더 깨끗하고 괜찮은 위치이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내이름으로 예약이 되어있는게 맞았다. 우릴 픽업한 여행사 이름도 프론트에 물어

확인했다.

내일 투어를 데려갈 여행사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그 리마 여행사 대표라는 사람은 뭐하나 제대로

일정이나 정보를 준게 없으니...

4성급 호텔인데도 벨보이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한다.

참, 사람의 편견이란.... 검고 키작은 오종종한 외모의 사람들은 최소한 2~3년은

안씻은 듯한 더러움과 미개함으로 느끼고, 영어가 뭐라고 영어 못한다는 거 하나 가지고

무식하다고까지 생각하기도하고,

상대적으로 키큰 백인들한텐  뭔지 모르게 약간 주눅이 드는 것 같은 이 신종 사대주의 (?)를 어쩌랴.

하지만 그들은 화려한 잉카문명을 불과 400여년전 까지도 이땅에 꽃피우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또는 북쪽 수천 킬로미터 어딘가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 물론 빈부격차로 나은 부류도 있어보이고 젊은 세대들다르다 - 작고 뒤떨어져보이는 도시의

별달린 호텔에선 선 인터넷이 연결되어 모든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번 여행 전 난 남편에게 넷북을 하나 사자고 제의했다. 집에 쓰던 소니 노트북이 있지만 너무 무거워

가지고 다니긴 힘들었다.

캐나다나 미국여행시엔 차로 다니니 가지고 다닐만했는데... 성능도 괜찮고 하지만 무거운건 어차피

애물단지 밖엔 되지않는다.

테크노마트에서 40만원을 채 안주고 산 대만제 조그만 넷북은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캐나다에서도 남미에서도 호텔에서 심심할 때, 다음 숙소 찾을 때, 친구들과의 카페에 접속할 때,

다음 여행지 날씨 체크할 때, 여행지 정보 검색, 한인 식당 검색까지도...

너무 유용하게 쓰고 있다. 카페에 접속해서 친구들과 인사를 주고 받으니 친구들은 특파원 하나 보내

소식 듣는 기분이라며 즐거워 해주었다. 나도 한국 소식도 계속 듣고 아주 좋았다.

남편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게 넷북 마련한거라며 아주 흡족스러워한다.

게다가 로밍해온 핸드폰으론 바로바로 아들녀석과 문자로 교신을 계속할 수 있다.

서울 날씨가 이러니 옷은 이걸 입고 가라는둥, 동복교복은 어디다 두었느냐 아이도 문자로 물어오고

난 답해주고...

참 좋은 세상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할 수 있다.

이제 지구상에  오지는 많이 남아있지않다.

페루의 조그만 시골 도시 푸노, 해발 4000미터의 이 고지대에서도 원하면 얼마든지

내 핸드폰으로 서울의 가족과 얘기할 수있다.

 

 

 

                       골목길에 이렇게 좌판을 벌이고 이것저것 파는 사람이 많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이런 조그만 교통수단도 눈에 많이 띈다


짐정리 후 시내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약국에 들어가 위생용품을 사자 약사 아저씨가 식당을 소개해준다.

같은 직종의 사람이 소개해준거니 무조건 믿고 그리로 갔다.

우리가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하니까 영어 메뉴가 있는 식당을 소개해준 것 같았다.

남미 특유의 음식인 세비체 ( 생선회와 야채를 식초와 양념으로 절인 것 )와 페루식 수프, 이름

은 모르겠지만 설명만 읽고 몇가지를 시켜봤다.

대체로 맛은 입맛에 맞았지만 좀 짠 편이다.

그 중 세비체는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함께 시킨 잉카콜라는 페루의 국민 음료이다.

검은 색이 아닌 노란색의 액체가 이채롭다. 

코카콜라가  전세계를 주름잡다  페루에 상륙했지만 잉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전세계를 제패한  코카콜라도 어쩌지 못한  페루 국민의 자존심 잉카콜라는 내 입맛에도 대만족이었다. 

지금은 코카콜라 회사에서 잉카 콜라 회사를 인수했단다. 씁쓸한 대목이다.

식사후 아르마스 광장과 성당 근처에서 사진을 찍었다.

 

 

 

                 푸노 시내 약국 앞에서,  2층이 우리가 갔던 식당이다

                           남미식 생선회 무침 세비체와 잉카 콜라

                                  푸노의 거리 - 길이 매우 좁다

    아르마스 광장 앞에서. 뒤로 보이는게 대성당이다. 워낙 작은 도시라 시내라봐야 손바닥 만하다.

                                        푸노 시청인듯 한 공공 건물

 


 잉카의 후예들은 스페인이 가져온 카톨릭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않고 자기네가 가지고 있던 토속 신앙과 접목을 시켜 새로이 융화된 모양새로  다듬어낼 줄 알았던  모양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십자가와  그 속에 보이는 예수님은 백인이 아닌 갈색 피부를 가진 분으로 묘사해낸게 재미있다. 여기 예수님은 그래도 많이 흰편이다.

나중에 쿠스코인가 어디 딴데서 만난 그분은 거의 흑인에 가까웠다.

원래 사람들 모습을 몰래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난 또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원주민 여인에게 카메라를

향했다. 물론 경치를 찍는 것처럼 가장하고. 그러나 그녀는 이내 눈치를 채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짐짓 돌아

앉는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사실 허락없이  내맘대로 남의 사진을 찍을 권리가 내게 어디 있겠는가.

그후로도 나의 이런 못된 (?) 취미 생활은 계속 됐지만... 안 들키려 노력했다.

 

 

 

 

               푸노 시내에서 만난 원주민 복장의 여인. 고단해보이는 이분은 전혀눈치못챘다.

 

 

 

 

 

 

 


푸노는 해발 4000미터를 넘나드는 고지대의 도시이다.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고 어질어질하다.

미리 고산증 예방약을 먹어 두었으나 효과가 있어서 이 정도인건지  아무튼 힘들다.

꼬까차 (  Mate de Coca )가 도움이 된다고 하여 로비에 있는 꼬까차를 여러잔 마셨더니 화장실

다니랴, 시차문제랴,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하루가 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