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7. 00:56ㆍ북미
나흘째, 오늘은 드디어 레이니어 국립공원이다.
레이니어 산은 캐스캐이드 산맥의 웅장한 산으로 북미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큰 산이다. 높이가 4394m. 한라산의 두배가 훨씬 넘는다.
빙하가 있는 곳이니 외투도 챙겨서 출발.
I-5 를 타고 남하하다가 레이니어 산 표지를 보고 Exit 을 나서는데 얼떨결에 원래 가려고 했던 남서쪽의 입구보다 훨씬 먼저 하이웨이를 빠져나오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로 하고 그냥 전진, 약간 돌긴하지만 북쪽 입구로 진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실수가 우리에겐 더 행운이었다.
레이니어 입구까지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꼬불꼬불한 산길 옆으로 얼마나 멋있는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지. 키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하늘이 거의 안보일 지경이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와아 와아 탄성만 질러댄다.
숲길로만 두시간 정도를 달리는데 감탄 또 감탄.
중학교 땐가.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수필 " 수목송 " 의 구절이 생각난다.
정말 근심없이 자란 나무들.
아무런 근심없이 죽죽 하늘로만 뻗어 마치 하늘을 경배하는 듯한 그 모습이 자못 경건하기까지하다.
레이니어에 접근할수록 스키 슬로프를 연상시키는 내리막이 계속된다. 우리가 상당히 높은 고도에 와있나보다.
달리는 동안은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굉장히 높은 곳이었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착륙하는 것처럼 계속 하강하는데 귀도 멍멍하고 몸도 뒤로 기울어진다.
표현력의 한계를 또 한번 느끼게 하는 새로운 경험.
그 끝도 없는 내리막이 또 너무 아름답다.
드디어 레이니어 산에 도착. 북쪽 입구에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Sunrise Trail 이다.
절벽에 바짝 붙어 운전하며 전망대에 가보니 숨이 딱 멎을 정도로 그림같이 멋있는 눈덮인 산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실물같지않고 큰 그림 한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이곳이 빙하중 가장 크다는 에몬스 빙하가 보이는 곳이다.
해발 1950 m.그렇게 높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애틀 시민의 식수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단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이 가깝게 느껴지는 거대한 빙하가 너무 신기하다.
지금이 7월인데, 산정상에서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양의 눈이 덮여 있어 소리라도 크게 지르면 한꺼번에 눈사태로 쏟아져내릴 테세로 나를 위협한다.
" 까불지 마라. 너희들이 나를 정복할 수 있겠느냐 " 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거대한 눈덮힌 골짜기에는 깊이를 알 수없는 크레바스가 또 기세를 드러내는가 하면 눈이 녹아있는 산자락엔 이름 모를 예쁜 들꽃이 가득 피어 온화하게 환영해준다.
다시 차를 몰아 산의 동쪽 등성이를 감싸고 남쪽으로 진입하는데만도 거의 한시간 반 정도 걸렸다. 산이 어찌나 큰지 산줄기를 한바퀴 돌려면 한나절 이상을 소모해야 한다.
그 숲길도 내내 감탄 또 감탄... 속도가 적당히 느린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으로 아름다운 산등성이를 계속 운전했다.
겨우 남서쪽의 입구인 Paradise 에 도착. 잘 꾸민 비지터센터가 반겨준다.
전망대에서 360도를 다 돌아가며 설명과 함께 레이니어 산을 감상했다.
정말로 잘생긴 산이다라고 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어 아쉽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아직도 해발 1500 m , 고도가 실감이 나지않는다.
걷기 삻어하는 남편과 아들아이를 달래어 여러개의 트레일 중 니스퀄리 트레일을 택해서 걷기 시작했다.
45분짜리 트레일로 산자락을 따라 수많은 들꽃들과 예쁜 나무들, 시냇물, 바위. 하늘, 옆으로 보이는 골짜기와 멀리 보이는 빙하와 눈덮힌 산, 뭉게구름....
정말 이름처럼 천국같은 곳이다. 아무데나 쳐다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다 그림같이 아름답다.
탄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걸어다니는데 난데없는 벌레들의 공격. 날벌레들이 정신없이 달라 붙는다.
가만 있다간 온몸이 벌집 투성이가 될 지경이다.
산길을 걷느라 더웠지만 점퍼와 모자로 중무장하고 팔을 마구 휘저어 계속 벌레를 쫓으며 걸어도 여러군데 물렸다.
남편은 " 여긴 벌레들의 천국이군 " 한다.
벌레를 몹시 싫어하는 아들녀석은 거의 울상인데다 두팔을 전투적으로 휘젓는다.
트레일을 마치고 다시 차를 몰아 레이니어 산자락을 빠져나오는데도 한시간이 훨씬 넘는다.
원래 계획으로는 산을 보고 컬럼비아강 계곡의 드라이브 코스까지가 오늘의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산이 너무 커서 시간을 많이 뺏겼다. 꽤 일찍 떠났는데도 산에서의 출발시간이 4시가 넘어버렸으니...
그래도 욕심을 내어 부지런히 달려봤지만 비도 오락가락하고 역부족.
아쉽지만 컬럼비아 계곡은 포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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