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6. 00:50ㆍ아프리카 外
아침인데도 태양의 위력은 대단했다.
규모가 커서만 놀라운 것이 아니라 미술적으로도 정말 아름다운 아부심벨 신전을 취한듯, 홀린듯 구경하고나니 너무 덥고 지쳤다. 신전 입구에 있는 휴게소 비슷한 카페테리아에서 세븐업을 하나 사서 마시며 조금 쉬었다.
또다시 관광버스들을 정비해서 콘보이와 함께 아스완을 향해 출발했다.
중간에 하이댐에 잠깐 들러 사진도 촬영하고 쉬었다.
하이댐은 1971년에 완공되었는데 러시아의 원조로 약 10억 달러나 되는 비용이 들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댐이다. 하이댐의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인 나세르 호는 마치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크기이고 이 호수에 수몰된 지구에 살고 있던 약 9만명의 이집트 농부들과 누비아 지역의 유목민들은 아스완으로 또 일부는 수단으로 이주해야 했다. 하이댐의 건설은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의 홍수를 통제하고 어업을
육성하고 다량의 전력을 생산하는 경제적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수많은 누비아 지역의 유적들이 수몰되고 범람으로 인한 비옥한 침적토를 잃었고 환경도 파괴되는 부작용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아스완 하이댐
하이댐의 구조를 보여준다
뒤로 거대한 나세르 호수가 보인다
하이댐 주변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
거대한 나세르 호수
하이댐엔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구경하고 있는 가족들 뒤로 하이댐 완공 기념탑이 보인다
이집트 왕국은 B.C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고 알렉산더 사후 그의 부하 장군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어 300년간 다스렸다. 다시 B.C 1 세기말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고 700년간 지배를 받았다.
7세기 중반에 이슬람 제국에 점령당하고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고 그후 오스만 터키의 속주로 있다가
18세기 후반 나폴레옹의 침략, 19세기 영국의 보호시대...
결국 B.C 330 년 이후 2,200 년간이나 계속 다른 민족에게 지배를 받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으로 좋은 위치와 비옥한 나일강 유역의 농업 생산성이 정복자들한테 눈독을 들이게 하는 빌미가
되었다. 정복자들은 식량 창고의 역활이 되어주며 더 멀리 아시아까지 점령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이집트를 그대로 둘 리 없는 먹잇감으로 볼 수 밖에.
1922년 명목상으로 독립하여 입헌군주국이 되었다가 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나세르가 최초의
본토 출신 지배자가 되었다.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고 호수는 그의
이름을 따서 나세르 호라 명명했다. 토지를 개혁하고 중립주의, 비동맹주의 외교정책을 폈으며 대통령에
세번이나 선출되었고 3차 중동전쟁 ( 6일 전쟁 )에서 이스라엘에 패배한 충격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하려
했으나 여론의 반대로 철회했다.
범아랍주의를 제창한 영웅으로 또는 독재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지만 그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자 이집트 국민들은 6일간 상점 등 문을 닫고 국장을 치르며 애도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고 나선 사다트 대통령은 나세르만큼 국민의 신망을 얻진 못했다고 한다. 4차 중동 전쟁을
유리하게 치렀고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이루어내고 시나이 반도를 되돌려
받았지만 아랍세계의 배반자라는 오명을 얻고 아랍국가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이슬람 극단
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1973년 사다트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때 ( 라마단 전쟁 - 4차 중동 전쟁 ) 사령관이었던 무바라크가
정권을 이어받아 사다트의 평화주도 정책을 계승했으나 헌법을 개헌하고 부통령제를 없애버렸으며 30년
이라는 기간을 군림한 독재자가 되었다. 무바라크는 정권을 틀어쥔채 서민의 지지를 얻고자 전기나 가스비 등
공공 물가와 아이시 빵 등 식료품의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아주 싼 가격으로 공급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도 자유를 원하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아스완에 돌아와 누비안 스타일로 꾸며진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빵이 유난히 부드럽고 파스타 가루가 들어있는 야채수프와 그릴에 구운 생선이 맛있었다. 역시 관광객이
적어 호텔안엔 우리들 외에는 몇명의 외국인들만 눈에 띄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주변을 둘러보니 나일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테라스가 있어 사진도 찍고 잠시
시간을 보냈다.
아스완 시내에서 하교길의 여학생들을 몰래...
점심식사를 한 호텔에서 내려다 본 풍경
호텔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고있는 우리를 보더니 동네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다
호텔 안의 창이 예뻐서
나일강의 진주라고 불리는 필레섬으로 이동하여 이시스 신전을 보러 갔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이 섬을 성스러운곳으로 여겼는데 이시스 여신이 아들 호루스 신을 낳은곳이어서 이시스섬이라고도 불렀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 따르면 이집트의 신 중 으뜸신인 오시리스가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와 함께 고대 이집트를 훌륭히 다스리고 있었는데 동생인 세트가 왕위를 탐내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시신을 열네토막으로 내서
방방곡곡에 뿌렸다. 이시스는 남편의 유해를 찾아내어 오시리스를 부활시키고 아들 호루스를 필레섬에서
낳았다. 호루스는 성장후 세트를 물리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위에 올랐다.
필레섬은 클레오파트라 7세가 로마의 카이사르와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기도 하단다.
대체로 보존 상태가 좋고 예술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신전이었다. 벽면에 새겨진 부조가 정교하고 아름답고
이시스 신과 호루스신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있고 그림문자도 잘 보존되어있었다.
신전을 거닐다 조금은 외모가 달라보이는 아저씨가 있어 말을 걸어보니 자신이 누비안의 후예라고 했다.
피부빛깔도 조금 더 검어보이고 키가 작은 편인 이 아저씨는 대대로 나일강가에 살아온 누비안이 자기
조상이라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워낙 호객 행위가 심하고 끈질긴 잡상인들한테 지친데다 인솔자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터라 다른 사람들은
잔뜩 경계를 했다. 그러나 뭐 어떠랴 싶기도 하고 누비안이라니 호기심이 생겨 함께 사진을 찍었다.
훗... 이 아저씨 사진 같이 찍자니까 내 어깨에 팔을 두르려 한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하자 웃으며
노터치 노터치 한다 ㅎㅎ
이사람들한테는 사진 모델 되어주는 것이 먹고사는 일인데 싶어 1달러를 쥐어주었다.
정면에서 본 신전의 모습은 규모가 아주 크진않아도 구도도 좋고 매우 아름다웠다
콥트 십자가의 모습
이시스 여신의 신전인데 이 콥트 십자가가 삼십개도 넘게 새겨져 있었다
이시스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
황소의 뿔을 가진 여신이 이시스 여신이다
얼굴이 지워져있는 이시스 여신
이 벽면의 신의 모습들도 지워져 있다
관광객들이 줄어들어 가는곳마다 한가한 경비원들과 노점상들이 눈에 띈다
기둥과 벽마다 섬세한 부조가 아름다웠다
신전에서 만난 누비안 아저씨
수많은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온 경력 (?)답게 포즈가 자연스럽다
기둥의 윗부분들도 아름다운 조각들로 정성을 다해 건축하였다
아름다운 나일강, 아름다운 필레섬의 신전인데 왜이리 쓸쓸해보이는건지...
점차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필레섬의 모습
아름다운 신전을 감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종교적 신념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과 예술품에 대한 폭력적인 테러행위가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로마시대 콥트 기독교라 불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정착하고 그들이 우상숭배라 여겨 수많은 신전에 행해놓은
만행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이시스 여신과 호루스 신등 신들의 얼굴은 모두 벽을 갈아 지워놓았다.
신상을 파괴하고 벽면에 새겨진 부조를 지워버리고 이미 아름다운 예술품 위에 십자가를 덧입혀 조각함으로
본래의 모습과 의미를 훼손하고... 타종교를 모독하고 예술품을 훼손시키고 역사적 가치를 떨어뜨리며 역사적
내용도 알 수 없게 만드는 무식한 행위....
이슬람 세력이나 기독교 세력이나 똑같이 전쟁에 승리하여 상대방의 영토를 점령하면 우선적으로 행한
야만적인 행위이다. 상대방의 정신적 근간이 되는 종교를 말살시킴으로써 우월함을 표출하고 저항에의
의지조차 꺾겠다는 심산이겠지만.... 너무 잔인한 짓이다.
아직도 종교적 전쟁은 끝나지않고 여전히 진행중이라는게 섬뜩하다.
저녁식사는 이집트 스타일의 케밥으로 향신료를 넣고 고기를 다져 빚어서 구운요리였다. 매우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웬만하면 음식 적응을 그런대로 잘하는 편인 난 먹을만 했으나 일행중엔 향신료가 싫어 잘
먹지않는 이들도 꽤 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 이름이 어려워 기억이 나진 않지만 ) 우유로 만든 푸딩같은
것이 달콤하면서도 맛있었다. 터키에서 맛보았던 달콤한 푸딩이랑 살짝 비슷했다.
이집트 맥주 사카라 ( Sakara ) 를 한병 마시며 긴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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