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6 -볼리비아 라파스 둘째날, 우유니행 밤버스

2011. 12. 29. 19:43남미여행

 

 

9월 27일 월

 

아침에 일어나니 그래도 머리가 띵하다.

라파스에 오기전 미리 고산증 예방약을 먹었는데도 이러니...

체력이 약한 우리 부부는 고산증은 운동 능력과 상관없이 체질과 관계있다는 말만 믿고 예방약과 보조

치료제만 챙겨서 그냥 저질러 본 여행이었지만 고산증 악화를 두려워해서 맥주도 거의 못마시고 유명하다는

피스코샤워 ( 칵테일 )도 마실 기회를 놓쳐버릴 만큼 두통과 어지럼증은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이라 3층인 우리방만 오르락거려도 숨이 찼다.

이런데서 축구를 한다는게 신기하다.

아무리 고산증세가 있다해도 구경을 포기할 순 없지.

평상시엔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지만 여행가면 부지런을 엄청 떤다고 남편은 신기해한다.

마녀시장과 사가르나가 거리를 구경하러 다녔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Ilampu 거리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마녀시장, 사가르나가 거리와 아주 가까워서 좋았다.

 

 

 

                           마녀시장의 좌판에서 본 말린 두꺼비                                                

                                사가르나가 거리 좌판에서 판매하는 기념품들  

                               

 

거리가 좁고 경사가 심해 내리막길에선 괜찮으나 다시 올라올 때 매우 숨이 찼다.

좁고 경사진 길을 수많은 차들이 질주한다.

월요일 이른 오전이라 사람도 차도 많다.

미니밴에 어린 차장이  행선지를 소리소리 지르며 사람을 태우는게 신기했다.

노선이 제대로 있는 커다란 버스도 가끔 있지만 이런 형태의 합승이 더 많은듯하다.

시내의 대부분의 길이 경사가 너무 심해 브레이크 손상이 심해서 자기네 나라의 차들은 브레이크가

튼튼한 차가 필요하다고 했던 가이드의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가끔 비싼 외제차도 보이지만 실용적인 일제 차종이나 현대, 기아차도 꽤 보인다.

좁은 골목을 클락션을 연신 울려대며 신호등도 제대로 없는데 사람들을 뚫고 아슬아슬

잘도 달린다. 운전실력도 대단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운전은 실력보다는 담력이 더 필요할 듯하다.

 

 


 

자외선이 매우 강하다는 우유니 사막 투어엔 챙이 넓은 모자가 필수일 것 같아 거리 좌판에서 남편

것과 내 모자를 샀다. 가격이 싼 만큼 모양도 질도 형편 없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로바로 꺼낼

수 있는 짐을 넣을 수 있는 싸구려 비닐 가방도 하나 샀다.

동전이 모잘라 지갑을 엎어 보이며 깎아달라하자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웃으며 깎아주신다.

신기한건 무엇을 사든 약간의 흥정도 가능하다는 거다.

파는 사람은 영어를,  난 스페인어 한마디도 못하는데 서로 눈치로...

그래도 꼭 필요한 몇마디 - 기본 인사, 숫자 등등 - 는 수첩에 몇마디 적어서 가지고 다니긴 했다.

생존용으로.

거의 꺼내보지않아도 전세계인의 공용어인 손짓, 발짓, 눈치가 더 빛을 발휘했다.

알파카가 싸다고 해서 스웨터 하나를 골라 흥정했다. 물론 계산기와 바디랭귀지로 가능한 흥정이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는데 아까 스웨터 가게 아저씨가 막 뛰어왔다. 뭐라고 막 설명하는데 처음엔

잘 모르겠더니 손짓 발짓 열심히 설명하는걸 잘 생각해보니 세탁시 주의사항을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시는

거였다. 일부러 언덕길을 뛰어와서 이렇게 열심히... 순박한 친절이 고맙고 기뻤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또 한번 좋아졌다.

 

길거리에서 볼리비아 국민 간식인 살떼냐 두개를  사서 먹어봤다. 살짝 달짝지근한 고기만두 비슷한

맛이다.

남편은 이것도 거부한다. 원래 처음 보는 음식은 잘 안먹는 사람이다.

 

 

 

 

 

스커트 가게 앞에서 본 원주민 복장의 여인. 짐을 아기 업은 것처럼 지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하다

여인들의 스커트는 기혼이면 이렇게 여러겹의 층층 치마이고 홑겹이면 미혼여성을 뜻한다


 

점심에 다시 한국식당 Corea Town 에 택시를 타고 갔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쌀밥과 김치와

함께 먹는데 감격스러웠다.

매일 당연히 먹던 김치와 된장이 이렇듯 반갑고 고맙다니...음식 적응 잘하는 편인 나도 이러니 남편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겨우 일주일에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게 재미있다. 너무 반가워 사진까지 찍었다. ㅋㅋ

 

 

 

 

미리 호텔측에 양해를 구해 체크아웃 시간을 오후 3시로 미루어놓았어도 우유니행 버스타러 갈 시간은 아직

멀었으므로  어느덧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버렸다.  짐을 싸서 로비에 맡기고 호텔안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러 갔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인터넷 음성채팅을 하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 USB를 사러

나섰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주었다.

몇년 전에 토론토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차로 미국을 종단했을 때나 옐로스톤 여행 때 그외 몇군데서 찍은

사진들이 컴퓨터가 고장나서 날아간 경험이 있어 다시 오기 힘든 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도 이중으로 보관

하자는 의미에서 사기로 한 것이다.

4기가 짜리 USB를 2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샀다. 확실히 물가가 싸긴 싸다.

돌아오는 길엔 길이 헷갈려서 일람푸 거리를 묻자 사람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호텔 안 카페에서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라파스의 번화가. 산꼭대기에 까마득히 빈민가가 보인다.

                                                                                                     

                                     길거리엔 알록달록한 알파카 제품들이 많다.
             

                                 

오늘밤부터 몇일 동안은 험한 길과 사막을 다녀야하니 저녁도 한국 식당에 가서 먹자고 합의하고 다시

찾아갔다.

물가싼 볼리비아니 택시비가 들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또 딱히 할일도 없었다.

가까운 곳엔 이제 별로 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없으니까.

식당에서 끓여준 신라면은 왜 또 그리 맛있는지...공기밥까지 맛있게 먹어치웠다. 사실 너무 과식이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어제의 그 가이드가 우릴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주었다.

터미널은 우리나라처럼 티켓부스가 한군데 있는 형태가 아니고 컴컴한 거리에 대형버스들이 잔뜩 서있고

행선지 별로 회사가 따로 있어  그중 우유니 마을로 가는 버스 회사 사무실로 찾아 들어가 예약한 티켓을

확인하고 부칠 짐을 부치고 하는거다.

 

티켓을 확인하니 이상하게 남편과 난 좌석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12시간이나 밤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말도 안된다.

사무실에서도 일단 탄다음 자리를 바꿔주겠다며 기다리라 한다. 사무실 앞엔 주로 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마 여행사 대표 말로는 우유니에 가는 사람은 자기로서는  1년에  한 두팀 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하더니

확실히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않았다.

그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여자가 반색을 하며 자기도 몇달전에 예약했는데

자기 이름도 김 XX 라서 버스 회사 측이 내이름 Kim과 혼동해 이중으로 예약을 해놓아 자기건 자리가

취소되었다며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자긴 하루 코스의 우유니 투어만 할거고 돌아오는

버스는 예약이 살아 있단다.

혹시 자리가 안나면 떼를 써서라도 타야겠다며 침낭깔고 복도에 누워서 가죠 뭐 하는거다.

페루에서도 볼리비아 비자를 받는데 하루에 안된다는걸 울고불고 매달려 받아냈다며 씩씩하게

웃어 보인다.

 

9시 출발이므로 8시 50분이 되자 탑승이 시작 되었다.

남편의 좌석은 맨뒷자리 화장실 옆이고 내자리는 거의 앞 쪽이었다. 내 옆좌석은 일본인 청년의

자리인데 고맙게도 불편한 화장실 옆자리임에도 바꿔주었다.

애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빈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저여자 어쩌냐 하며 내다보니 밖이 시끌시끌하다.

정말로 그녀가 운전기사와 사무실 사람을 붙잡고 플리즈를 연발하고 있었다.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아마 차문을 못닫게 붙잡고 막고 있는 눈치였다.

딱하긴 했다. 자기 잘못이 아니고 회사 측의 실수로 이중 예약이 된건데 이 밤중에 갑자기 어디로 가며

돌아올 버스는 예약이 되어있으니 그건 또 어떻게 하고...

다음 스케줄도 모두 꼬이는 낭패를 겪게 되었으니 정말 난감한 노릇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30분 이상을 붙잡고 버티는 그녀의 질기고 당차고 무모한 줄다리기가 나중엔 조금씩

두려워졌다.

 

조수석이나 복도에 침낭을 깔고 눕겠다, 위험하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괜찮다 난 괜찮다,

조수석의 교대 운전기사도 쉬어야 하니 위험해서 안된다, 절대로 방해가 되지 않겠다,  

제발 태워만 달라....

뭐 대충 이런 얘기의 반복이 끝도 없이 오고가는 눈치였다. 버스를 타면 승객 쪽과 운전기사 사이에 칸이

완전히 막혀 문을 닫아 버리므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없어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회사 직원들은 여자가 울며불며 매달리니 억지로 끌어내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고만

있는 눈치였다.

너무 오래 차가 못떠나고 있으니 승객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문을 두드리고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고서 9시 40분이 넘어서야 겨우 상황이 종료되었다. 

회사 직원이 객실에 들어오더니 소란이 있어 운행이 늦어져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니

처음 4~5시간 정도는 포장도로라 잠을 잘 수 있으나 그다음은 길이 비포장에 매우 험해서  Pumping 을

할테니  빨리 미리 자두라고 하는게 아닌가.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리곤 버스는 출발했다. 출발하고 바로 저녁식사라며 볶음밥을 나눠 주었다.

우린 이미 너무 과식을 해 쳐다도 보기 싫었다.

 

남미의 장거리 버스들은 현지인이 타는 싸구려 버스 말고는 버스 안에 화장실도 있고 10시간에서

20시간이 넘어가는 운행시간 때문에 간단한 식사도 제공한단다.

중간에 거의 휴게소 같은데 들르지않고 운전기사가 교대로 운전하며 무정차 운행이 대부분이다.

버스에도 등급이 있어서 까마 ( Cama )급, 세미 까마 ( Semi Cama )급 , 현지인이 타는 일반버스 들이

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세미까마 등급이고  요금이 US 33 달러여서 그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세미까마는 좌석이 180도 까지 넘어가진 않아도 그래도 뒤로 꽤 젖혀지고 깨끗하다는데 우리 버스는 좀

오래된 건지 별로 시설이 좋지않았다.

까마는 스페인어로 침대를 의미해서 까마급은 좌석이 완전히 펴지고 매우 럭셔리하다고 들었다.

특히 화장실이 아주 좁고 변기 시트가 너무 높아 불쾌하면서도 불편하고...숏다리인 내겐 자존심 상하는

높이였다.

난 원래 공중 화장실에 가면 엉덩이를 변기 시트에 닿지않고 볼일을 볼 수 있는 신공의 소유자인데 -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진 기술일거다 - 이건 불가능했다.

내가 보기에 이 버스는 탈 때 브랜드를 보진 못했지만  아주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만든 버스이고

그걸 수입해온 듯하다.

좌석도 너무 높아 앉으면 다리가 불편하고 그렇다고 뻗기에도 넓지도 않다. 원래 12시간을 가려면 지루하고

입도 심심할테니 군것질거리도 잔뜩 챙기고 물, 오렌지까지 챙겼지만 화장실에 가기가 너무 싫어 물조차도

거의 안마시고 버텼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밤버스가 엄청나게 춥다고 담요를 챙기라는 조언이 대세이므로 겉옷과

조그만 담요까지 가지고 버스에 타서 더 비좁았다.

춥기는 커녕 히터가 빵빵 나와 더웠고 점심, 저녁의 과식으로 속은 불편하고 잠이라도 자보려고 먹은

멀미약때문에 잠은 안오면서 머리는 몽롱했다.

 

한참을 달리더니 진짜로 포장도로가 끝나버렸다.

정말 말그대로 펌핑, 펌핑이었다. 자갈들이 튕겨지는게 온몸에 특히 엉덩이와 허벅지에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내 평생 이토록 오랜시간동안 이토록 심한 덜컹거림을 당하면서 차를 타보긴 처음이다.

어릴적 우리나라 시골길에서 타본 버스도 이것보다는  덜 심했던 것 같다. 소리도 요란하고 돌이 튕겨서

부딪히는 빈도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다리가 너무 불편하고 화장실도 가고싶고 ...아주 잠깐 졸다 다시 깨며 거의 밤을 새고나니 동이 트고 있다.

 

새벽이 되자 아침식사로 요거트와 빵, 쿠키를 주었다. 이것도 못먹고 말았다. 도저히 먹을 기분도 상황도

아니다. 그래도 주위의 사람들은 어제 저녁식사부터 잘 먹고 잘자고 적응력이 우수해 보인다.

다리도 허리도 아프고  머리까지 아파지는데 주위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8시 쯤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간 우유니행 밤버스. 12시간을 시달린 승객의 표정이 생생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Kim 이라는 피켓을 든 녹색 스웨터 차림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우리 말고도 유럽인으로 보이는 한커플도 픽업해서 근처 호텔로 데리고 가 아침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가라고 했다.

너무나 반가운 소리... 화장실로 직행했다. 버스에서 화장실 가고 싶은걸 너무 참아 배에선 우르릉 꽝 

전쟁이 한창이었다.

양치도 하고 물이 너무 차가와 고양이 세수도 하고...

조금 사람같아진 모습이 되어 아침식사를 하러 갔더니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온다.

훤칠한 키의 젊은 남자 셋과 여자 하나.

유쾌한 어조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우유니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이 호텔에 투숙했던 일행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신부님 두분과 신부님이 되실 분, 수녀님이었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라고 했던가

암튼 시골 마을에 선교활동을 하러와서 언어연수를 6개월간 마치고 잠시 우유니 관광을 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가 우유니 투어를 하려고 한국에서 왔다고하자 깜짝 놀라며 용감하십니다 한다.

한국에서 관광오기엔 멀고 외진 곳이라 의외라는 표정들이다.

물을 많이 준비하고, 물휴지도 많이 필요하고 아주  힘드니 각오하시라고 조언을 해준다.

젊은 자기들도 너무 힘들었다며.

나이가 많아 보이고 체력이 약해보여 그러나보다... 또 걱정이 되었다.

9시 10분  우유니 투어를 함께할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