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1. 00:35ㆍ아프리카 外
시크의 끝자락이 다가오며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않는 가슴을 붙잡고 한발 한발
다가가던 그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난 조금씩 아끼며 천천히 음미하듯 시크의 끝으로 다가갔다.
내 마음속의 보물을 좀 더 천천히... 그리고 경건하게 맞이할 필요가 있다.
마침내... 가려진 협곡의 커튼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장미빛 보물...알 카즈네 ( Al -Khazneh )...
가슴이 벅차오르는 최고의 행복감을 느껴야 하는데... 이런...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 했던 나의 보물을 좀 더 조용히 만나고싶은데 여건이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조금 과장을 허락한다면 그에 못지않게 많은 장사꾼들로 북적대는 광경에 속이
상했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아우성인 일행들까지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쩌랴..이곳은 요르단의 국가적 차원의 최고 관광 수입원인 유명 관광지가 아닌가...
비록 정신없이 붐비고, 장사꾼들의 호객하는 소리로 시끄럽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혼자 아무 말 없이 꿈을 꾸듯 바라보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내 보물을 즐겼다.
오랫동안 알 카즈네를 바라봤다. 앞에서도, 옆에서도, 가까이에서, 그리고 또 멀리서...
손을 대볼 수 없으니 마음으로 수백 수천번 어루만졌다.
절벽을 파서 이리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낸 나바테아 인들이 존경스러웠다.
난 그자리에서 남편한테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 이곳을 올 수 있게 이해해주고 보내줘 고맙다...
다 당신 덕분이다...함께 하지못해 너무 아쉽다... "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진심으로 남편이
고마웠고 이런 곳을 같이 보지 못하고 나만 보고 있는게 미안하다고 느꼈다. 감사한 일에 민감해지고
감사함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않게... 이렇게 나의 보물은 나를 착하게 만들고 있었다...ㅎㅎ
함께 온 일행 중 한사람이 잔뜩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휴가를 받아 부모님 댁에
왔다가 여행왔다고 하는 선량한 젊은 사람으로 매너도 좋고 어른들한테 잘해서 팀원들이 다들 좋아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여행오기 전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확인하지않아 용량이 적은 카드라서 사진이
이미 꽉차서 더이상 찍을 수 없다고 했다. 용량이 큰 카드도 있는데 깜빡 잊고 교체하질 않은 것이다.
이미 찍은 사진을 조금씩 지워가며 아껴서 사진을 찍는 그가 안쓰러워 사진을 몇장 찍어주었다. 앞으로도
괜찮은 경치 사진을 찍으면 이메일로 보내주겠다 했더니 고마워 했다.
다시 와보기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곳이기에 다들 욕심껏 사진을 찍어대는데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고 해도 우리 인생은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그걸 수습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건물의 구조도 색감도 너무나 아름다워 내눈엔 완벽하게 보였다
절벽을 그대로 파내어 지은 것이므로 윗부분은 그대로 바위산이다
알 카즈네 주변의 모습
알 카즈네 앞에서 바라본 시크 쪽 -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손님을 기다리는 낙타꾼들
알 카즈네는 영어로는 The Treasury 라고 표기하며 아랍어로 보물창고 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트라 하면 알 카즈네 하나만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만큼 알 카즈네가 페트라를 대표
하는 건물로 보존 상태도 좋고 아름답고 예술적으로도 뛰어나다.
깊은 계곡의 절벽을 파서 만든 건축물로 2천년이란 세월 동안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도 신비스럽다. 알 카즈네라는 이름은 베두인들에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곳에 보물을 숨겼다는
소문이 퍼져 파라오의 보물창고라고 부르던 이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B.C 100년경 사암을 파서 헬레니즘 양식으로 만든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높이가 43 미터, 길이가 30 미터의 크기이며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의 구조이다.
알 카즈네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태양의 빛이 온전하게 외관을 비추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로
장미빛을 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본 알 카즈네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좀 더 일찍 도착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답고
신비스러울지... 안타까운 상상이 펼쳐졌다.
알 카즈네를 지나쳐 좀더 전진하면 좀 더 협곡이 넓어지기 시작하고 나바테아 인들의 무덤 군들이 나온다.
약 500여개의 무덤 들이 산재해 있다는데 알 카즈네 앞에서 혼자 즐기며 지체하느라 놓쳐버린 가이드의
설명이 아쉬워졌다. 뭐가 뭔지...
앗시리아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는 무덤 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붉은 사암을 파서 만들어 색깔도 장식도
아름답다. 주인이 밝혀진 무덤도 있고 이름모를 사람들의 무덤이 더 많다.
나바테아 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들도 보이고. 사막의 더위와 추위, 모래 바람을 피해 동굴
생활을 했으리라.
강수량이 적은 이 도시에서 물이 귀하므로 나바테아 인들은 수로를 파고 산을 깎아 터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시설을 만들고 각각 주택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을 만들었다.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 도시를
자세히 탐방하면 목욕탕, 상수도 시설과 각종 발달된 문화 시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먼 옛날 번성했던 시대에 말과 마차가 다녔을 교역로를 따라 이동하니 노천 극장이 나타난다.
로마 제국의 원형 극장과 유사한 형태의 노천 극장은 이 역시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것이 이채롭다.
약 8,500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극장이 웅장했다. 지금은 쓸쓸한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노천 극장 근처에 차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작은 간이 카페가 있고 장사꾼들이 모여있었다.
노천극장을 지나쳐 나바테안 대로 ( Facades 거리라고도 한다 )를 따라 가면 페트라 시티 센터에
도달하고 왕실 무덤군이 나온다. 여기서 한시간 정도 더 들어가면 알 데이르 수도원이 있다.
그외에도 두세시간 더 트래킹을 하면 이름이 밝혀진 귀족들의 무덤과 납골당 무덤 등 유적들을 더 볼 수 있고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텐데 시간이 아쉽다. 주변엔 베두인족이 실제로 살고있는 마을이 있으니
이집트로 돌아갈 마음이 없으면 가서 구경하라고 투어 가이드는 농담을 했었다.
누웨바로 돌아갈 배 시간에 맞춰 가이드가 자유시간을 정해주었는데 요르단 입국 때 지체된 탓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리를 해서 빨리 걸으면 잘하면 수도원과 그 근처까지는 보고 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경치를 감상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정신없이 달려야 했기에 너무나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게다가 배탈이 완전히 괜찮아지지않고 간헐적으로 복통이 있어 조심하느라 식사가 부실해서 더위와
싸우며 달리기엔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 있었다.
알 카즈네를 지나쳐 노천극장 쪽으로 이동하는 길
절벽을 깎아 도시를 만들었다
자연이 바위에 만들어놓은 무늬가 너무나 아름답다
길을 따라 소소한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은 늘어서 있고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멋있다
동굴들은 나바테아인들이 거주했거나 무덤으로 쓰였다
절벽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말들이 절벽아래서 쉬고 있었다
터번을 두른 장사꾼들
기념품과 음료수 등을 파는 가게
나바테아인들이 거주했었을 동굴, 지금도 베두인들은 다수가 동굴에 거주한단다
무덤으로 추정된다
노천 극장
당시에는 3,000 석 규모로 지었으나 로마시대에 8,500 석 규모로 증축했다고 한다
페트라는 입구가 하나이므로 들어간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다. 더위와 강렬한 햇빛과 심한 흙먼지,
게다가 배고픔까지 견디며 되돌아 나오는 길은 깊은 아쉬움과 피곤이 버무려져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리며 들어올 때 찍지못한 인증샷을 몇 컷 일행 들과 서로 찍어 주었다.
알 카즈네 앞에서도 다시 인증샷을 찍고.
들어올 때 그리도 감탄했던 시크는 또 한번 나를 감동시켰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알 카즈네가 자연이 만든 작품에 인간이 더욱 보태어 완성한 것이라면 시크는 온전히 자연이 이루어낸
완벽한 걸작품이다. 알 카즈네가 그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시크가 존재해서였다.
다시 되돌아 나오며 인증샷을 바위들의 모습도 참으로 기묘하다 알 카즈네 앞에서도 인증샷을 이젠 시크도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며 나가는 길 시크에서의 인증샷 수로의 모습 이렇게 좁은 폭도 있다 바위에 편안히 누워있는 저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수려하게 생긴 바위에 섬세하게 새겨놓은 모습 - 세월과 바람에 옅어졌다 절벽 앞의 로뎀나무 일행과 함께 아무리 둘러봐도 질리지않는 절벽들과 바위 모습 나오다가 그늘을 만나 잠시 쉬었다 일행들과 숨을 돌리며 영국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 " 라고 노래했던 페트라를 정말로 떠날 시간이다. 안녕...나의 보물.... 페트라 고대 도시는 아직도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토록 염원했던 페트라를 한나절 만에 놓아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으나 언젠가 다시한번 더 많이 발굴이 되어있는 모습을 보러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시크를 다 빠져나와 잠시 그늘에서 쉬는데 일행 중에 한분이 너무 힘들어 하고 계셨다. 공복이 되면 저혈당 증세가 있으셔서 그렇다고 하자 인솔자가 가지고 있던 쿠키를 재빨리 드렸더니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70이 넘으신 그분은 절친한 친구분과 함께 이번 여행에 참가하셨는데 두분 모두 사진에 취미가 있으셔서 카메라 가방이 웬만한 배낭 크기였다. 카메라를 몇개씩 들고 다니시며 사진 작가 수준의 고퀄리티 사진 실력을 보여주신다. 지구촌 곳곳을 누빈 얘기를 들려 주셨었는데 참으로 부러웠다. 취미가 맞고 마음이 맞는 친한 친구끼리 건강하게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허락이 되니 더욱 다행스런 일이다. 나역시도 나이먹어서도 오랫동안 여기저기 돌아니며 사람사는 냄새도 맡고 자연도 구경하는 것이 꿈이다. 인디아나 존스 기프트 샵 앞에서 서서히 해가 지고 있는 와디무사 골짜기 마을로 나와 기념품을 잠깐 사고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세시반이 되어서야 먹는 점심이어서 다들 전투적으로 식사를 했다. 5성급 호텔의 뷔페라는데 음식이 대단히 훌륭하진 않았으나 우리 일행 뿐 아니라 그 식당의 모든 사람들이 접시에 음식을 욕심껏 담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카바 항을 향해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계곡에서의 석양을 감상하게 해주는 것까지가 투어의 일정이었다. 해발 1,000 미터에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꽤 아름다웠지만 좀 불만스러웠다. 석양은 핑계이고 휴게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꽤 되었으며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쇼핑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가이드가 미워졌다. 아무리 봐도 휴게소 측에서 인센티브를 챙기는 눈치였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알 데이르 수도원까지라도 보고 나오는건데...ㅠㅠ 피곤에 지쳐 까무룩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며 아카바 항에 도착했다. 배를 다시 타고 누웨바로 귀환해 호텔로 돌아오니 늦은 밤이 되었다. 오늘도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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