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이집트, 요르단 8 아,아..페트라 !

2013. 3. 19. 12:11아프리카 外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페트라 ( Petra )다

요르단으로 국경을 넘어가서 관광을 하는거라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요르단에

머물며 실컷 보고 싶지만 단체 여행이니 그럴 수도 없고.

바나나와 쥬스, 빵 등을 챙겨서 누웨바 항구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요르단의 아카바 항으로 향했다.

배안에서 아침식사도 간단히 하고,

( 밀폐된 선실에서 일행 중에 한사람이 갑자기 햇반과 김치를 펴놓고 먹기 시작해 신김치 냄새 때문에

외국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배멀미하는 사람도 있고 이른 아침이라 컨디션이 저조한

사람들도 있을텐데...웬 민폐람... 같은 일행이라는게 창피했다. 그러고 보면 그사람은 항상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을 배려하지않아 몇일 안되었는데도 다들 좀 꺼려하게 되었다. ) 사진도 찍고 시간을 보냈다.

새벽같이 일어나 조금 눈을 붙이면 좋으련만 페트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어 앉아있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약 두시간 반 쯤 걸려 아카바 항에 도착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요르단이 못사는 편이라는데 그래도 이집트의

누웨바 항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깨끗하고 화사했다.

줄을 서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이집트와 달리 관광객이 꽤 많아 오래 걸렸다. 일일이 여권을 조사하고

입국 도장을 찍고 ...

 요르단 측의 현지 여행사 가이드를 만났다.

버스로 두시간 쯤 더 가야 페트라 입구에 도달하므로 점심식사를 포함한 페트라 1 일 투어를 신청한 것이다.

 

 

 

아카바로 타고간 배

 해가 뜬지 얼마 안된 누웨바 항

 배 안에서. 뒤로 황량한 산이 보인다

 

 페트라를 본다는 기쁨에 한껏 들뜬 우리 일행,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분주하다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곳이 입국심사를 하는 이민국이다

아카바 항

 

항구 근처 호텔 앞에서

 

 

투어 버스는 낡은 관광버스였는데 관광객 들을 꽉꽉 채워서 출발했다.

워낙 다국적의 관광객들이므로 투어 가이드는 모든 설명은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페트라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주의사항 들을 얘기해주고 많이 걷고 힘들테니 좀 자두라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잠이 올리가 있겠는가.

여행 중 친해진 일행분과 (  알고보니 과는 다르지만 대학 선배님이었다 ) 두시간 동안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분은 나보다 십년 가까이 연배가 높으셨는데 중학교 시절에 우연히 읽은 신문기사에서 페트라를

처음 접하고 그때부터 페트라 여행을 꿈꿔왔고 이 여행도 일착으로 신청했다면서 고이 간직해 두었던 빛 바랜

 신문기사를 내게 보여 주셨다. 게다가 요르단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온 대학생과 펜팔도 했었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일행 중엔 페트라를 가고 싶어 이 여행을 오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여럿 있었다. 

갑자기 동지의식이 생기고 더욱 친해졌다 ㅎㅎ

 

요르단( Jordan )의 고대 도시 페트라( Petra ) 유적은 시크 ( Siq )부터 알 카즈네 (Al - Khazneh ), 

페트라 시티 센터 , 알 데이르 수도원까지를 포함하며 매표소에서 알 데이르까지 아무것도 하지않고

걷기만 해도 두시간 이상이 걸리는 규모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 인디애나 존스 - 최후의 성전 " 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이곳은 요르단이

국보 1호로 지정해놓은 고대 도시이며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도 했다. 요르단의 남부에 위치하며 수도인 암만 ( Amman ) 에서 260 킬로 미터 쯤 떨어져 

있는 이 고대 도시는 거대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평균 해발 1,100 미터의 산악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에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엔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추운

전형적인 사막 기후를 지녔으며 연중 강수량이 10~ 15 센티 미터 밖에 안되는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이다.

 

원래 페트라 지역에 인간이 거주한 것은 B.C 7,000 년경부터라고 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동부에서

건너온 아랍계 유목민들이 이곳에 정착을 했고 이들이 나바테아인들이다. 나바테아 인들( Nabataeans)

은 직접 대상 무역을 하거나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 지역은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으로 모세의 출애굽 시기 즉 B.C 1,400 년경 셀라 ( Sela )라고 불렸으며 셀라는 히브리어로 바위라는 뜻이고 페트라는 헬라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나바테아 인들은 B.C 4세기경 나바테 왕국을 세우고 교역 중심의 요새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페트라이다.  B.C 1 세기 무렵엔 3만명의 인구가 거주할 정도로 번성했던 페트라는 로마인들에게 A.D

106년 점령당했다. 로마군이 페트라를 함락시킬 때 물에 독을 타서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나바테아인들의 상업활동을 보장해주고 교역로의 중심으로 더욱 성장시켰으나 4세기 들어

로마제국의 쇠퇴와 더불어 교역로의 중심지가 다마스커스 쪽으로 옮겨지면서 쇠락하기 시작해  나바테아

인들은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 후 363년,  551년 두차례에 걸친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음

으로 인해  수자원이 고갈되어 모든 거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버리고 폐허가 되어 버려진 도시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잊혀진 도시가 되어버린 페트라는 나바테아인들의 후예인 베두인 ( Bedouin )족만 전설로 얘기

할 뿐 철저히 숨어 있었다.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루드비그 부르크하르트가 아프리카 탐험을 하러 가기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나가다가 상인들에게 얘기를 듣고 페트라 발굴에 발벗고 나서 베두인 족 안내원과 함께 사해 남쪽에

있는 깊고 좁은 골짜기를 통해 들어가 마침내 발굴을 해냈다.

수세기 동안 잊혀졌던 이 고대 도시가 전세계에 드러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역시 황량하기 그지없는 바위산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두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와디 무사 ( Wadi Musa ) 라는 작은 도시로 아랍어로 모세의 도시라는 뜻이다.  

페트라 유적지의 입구로 가서 드디어 입장이다.

우린 당연히  1일권을 샀지만 티켓은 1일 ,2일, 3일권의 세종류로 판매하고 있다. 자유 여행으로 왔다면

최소한 2일권은 샀을텐데... 티켓은 상당히 비쌌다. 하루에 50 JD이니 70 달러가 조금 넘고 우리나라

돈으로는 거의 8만원에 해당한다.

매표소에서부터 시크까지는 약 800 미터라는데 당나귀, 말이나 마차 등을 타라고 삐끼들이 아우성이었다.

말은 시크 입구까지만 가능하고 마차는 알 카즈네까지 탈 수 있다고 했다.가이드가 멀지 않고 바가지를

쓰기 쉬우니 가능한 타지 말라고 조언을 했지만 기어이 우리 팀 중 한명이 말을 탔다. 물을 살 때나 매너

팁을 낼 때 잔돈이 없다고  항상 뒤로 빠지거나 빌려 달라더니 타는데는 얼른 나섰다.

물론 김치 냄새를 풍겼던 그사람이다. 에혀...

시크까지는 누런 흙먼지가 풀풀 나는 자갈길이고 주위는 온통 바위만 눈에 띌 뿐 풀포기 하나 보기가 아주  

힘든 척박한 환경이다. 그늘은 전혀 없고 태양은 작열하는데 한참을 걷자니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다.

더구나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알 카즈네는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답다는데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었으니 마음이 바빠 발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페트라 입구의 현판

흙길인데다 매우 건조해서 흙먼지가 심했다

바위 기둥 - 용도를 정확히 알 수없다 

그늘이 없어 온통 가린 모습

 

온통 바위들만 보이는 길

마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쉬고 있다 

 

 

  

20 여분 쯤 걷자 드디어 시크 ( Siq - 협곡이라는 뜻 ) 가 나타났다. 약 300 미터의 높이가 되는 거대한

바위산이 좁은 폭으로 갈라져 있는 협곡이 약 1.2 킬로 미터나 계속되는 장엄한 광경은 사진 만으로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큰, 숨이 막힐 듯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시크는 물에 의한 침식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거대한 바위 블럭이 지각 변동에 의해 분리되어 생긴 것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물과 바람에 의해 바위 표면이 부드럽게 변한 것이다. 폭이 가장 넓은 곳도 5 미터

밖에 안되고 보통 2 미터 정도로 좁은 협곡을 지나며 붉은 사암의 아름다운 색깔과 신비로운 모양에 내내 

감탄하며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 댔다.  

이 협곡의 아름다움 때문에 페트라의 가치가 더 완성이 되고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간간이 마차가 지나가면 깜짝 놀라 비켜줘야 할 정도로 길은 매우 좁았고 번번히 뿌연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마차는 속도도 아주 빠른 난폭한 폭군이었다. 여간 민폐가 아니었다.

 

 

트리클리니움 무덤

 

 

시크의 시작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앞으로 진행이 더디다

 

 

 

 

 

 

 

 

 

 

 

 

가이드가 수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전속력으로 난폭하게 달리는 마차 때문에 영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