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7 - 볼리비아 우유니투어 첫째날
9월 28일 화
우유니 마을은 해발 3675 미터에 있는 작은 마을로 우유니 투어를 하기위한 여행객들만 들르고 그들을
위한 여행사, 호텔 몇개가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이다.
마을 주위가 사막과 황량한 고원지대이므로 따로 산업이 발달할 수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여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오지마을이다.
이젠 소금사막의 소금 중에 리튬 함량이 높아 주목을 받기 시작해서 우리나라도 리튬 개발권을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해내고 앞으로는 개발이 당연시되는 곳이다.
전세계 리튬의 40%에 달하는 엄청난 보유량으로 5400만톤이나 되며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5,150 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
그렇지만 지금 볼리비아의 국력으로는 도저히 단독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게 문제이다.
우유니 투어는 대부분 우유니 마을의 여행사에서 바로 가격 흥정을 하고 대여섯명이 한조가 되어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함께 하는 투어가 대부분이다.
우유니 소금사막만 보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투어나 2박 3일 투어의 두가지가 있다.
2박3일 투어가 보통 US 8~90불이고 국립공원 입장료는 불포함인걸로 알고 있다.
우린 우유니를 거쳐 칠레의 아따카마 사막으로 넘어갈 예정인데다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하는 2박3일
투어는 숙소나 식사가 너무 열악하다는 얘기에 개별투어를 미리 예약해서 갔다.
사실 한국에서 미리 비행기표와 호텔 등 전일정을 한꺼번에 예약해서 우유니 투어만 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린 식사와 호텔비 포함하고 볼리비아 사막에서 하루만 자고 아따카마 사막이 있는 산페드로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깔라마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조건이라 보통의 경우랑 투어비를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려울거라 본다.
어쨌든 가이드 미팅을 하면서 영어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있게 한다고 대답을 한 이청년의 이름은
윌손이고 포토시가 집이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나이가 지긋하고 수줍은 미소를 가진 말없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탈 차는 토요타의 사륜구동 지프였다.
우린 우유니 사막에서 칠레로 갈 것이므로 마을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미리 출국신고를 하기로 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참 소박 (?)했다. 낡은 사무실에 직원은 한명 뿐으로 절차는 간단했고 출국세를 얼마간
냈던 것 같다.
물을 큰병으로 두병 더 샀다.. 이젠 이정도의 단어는 술술 나온다. 아구아 신가스 그랑데....ㅎㅎ
남미에서는 물을 꼭 사서 마셔야한다. 판매하는 물은 두가지가 있어 탄산이 들어있는 물은 꼰가스 ( Con Gas ), 탄산이 들어있지않은 보통 물은 신가스 ( Sin Gas )다.
아구아는 물이고 그랑데는 큰걸 의미한다.
마을을 벗어나 얼마 안달려 기차의 묘지라는 곳에 도착했다.
원래 볼리비아는 세계적인 은광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포토시는 지금도 은광산이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각종 광물과 은을 싣고 오가던 기차였으나근래에는 광물의 생산이 줄어들고 경제성이
줄어들어 더이상 기차가 운행되지않아 버려져 있는 형편이다.
이제는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영어를 한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가이드 윌손은 너무나 이상한 발음의 영어 단어 두어 마디에 주로는
스페인어를 섞어 말하고 그나마도 웅얼웅얼 더듬는 화법을 구사하는지라 알아듣기가 매우 힘들었다.
순박한 청년이지만 약간은 머리가 나빠보이기도 한 그는 묻는 질문마다 엉뚱한 대답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질문을 이해못하고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걸 아무거나 얘기하는 듯 보였다.
이러면서도 자신있게 영어 한다고 대답하다니 사기친거아냐 하는 생각이 든다.ㅋㅋㅋ
햇빛이 너무 강해 남편은 이렇게 중무장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다음은 꼴차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수입원은 소금생산이다.
소금을 긁어모아 차로 운반한다. 20억톤에 달하는 엄청난 매장량의 소금은 아무리 파내도 줄어들 것
같지않게 풍부하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생산되는 천연소금을 고온에서 가열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잘게 부수어 식용 소금을
만들어 이렇게 수작업으로 봉지에 담아 비닐봉지를 불로 봉하는 단순작업을 하고있는 그녀에겐 사진을
찍는 댓가로 약간의 팁을 주었다.
마을 앞에선 허접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소금도 팔고 있는데 500그램 한봉지가 1 볼리비아노스로 너무 싸다.
다시 길도 없는 흰 소금위를 달려 사막안에 있는 소금호텔로 갔다. 소금 벽돌로 지어진 이 호텔은 내부,
외부 모두 소금블럭으로만 지어져있다. 단지 화장실만 소금이 아니란다. 물에 소금이 녹으니 화장실만은
소금으로 할 수가 없다.
놀랍게도 호텔 입구 문엔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와 함께 한글도 적혀있었다
지금은 숙소로는 쓰이지않고 그냥 전시용이고 기념품을 판매하기만 하는듯하다.
이 소금 벽돌은 갈색의 퇴적층이 겹겹이 줄로 보여 매우 이색적이고 아름다웠다.
호텔 밖엔 여러나라의 국기가 꽂혀있는데 안타깝게도 태극기는 거센 바람에 찢어져 반토막만 나부끼고
있었다.
이번 남미 여행에서 마추픽추보다도 더 기대하고 만나길 열망했던 우유니 소금사막 ( Salar de Uyuni )
은 날 실망시키지않았다.
배낭여행자들이 서슴치않고 가장 이색적이고 최고의 경치의 여행지로 뽑은 우유니는 명성에 어울리는 가치를
갖고 있었다.
하늘엔 구름도 거의 없고 파란 하늘과 하얀 소금 사막의 색감은 눈이 부셨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흰 소금, 소금 뿐이다.
소금으로된 지평선...상상은 하고 왔지만 막상 와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지금은 건기이므로 하얗게 결정이 된 소금밭이지만 12월에서 3월에 이르는 우기가 되면 깊게는 20~30
센티미터 깊이의 소금 호수가 되어버린다.
맑은 호수에 그대로 비친 하늘과 구름,사람, 자동차가 모두 다 두개씩...
이 광경은 정말 가슴이 설레다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이라고 한다.
난 우기 때의사진을 보고 단박에 반해버렸다.
이 여행이 결정됐을 때 이왕이면 우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조금 서운해했었다.
말타면 종 부리고 싶어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않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원래 안데스 산맥은 해저가 융기되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데스의 여러곳에서 소금기는 쉽게
발견된다.
수만년전 볼리비아 남서부는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기전 바다 밑이었고 후에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가 녹은 물이 분지에 모여든 땅속의 염분을 녹여 소금 호수가 생성되고 고원지대의 건조한
기후로 증발이 되어 소금결정이 퇴적된 것이 지금의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강렬한 태양빛이 흰 소금에 반사되어 선글래스를 쓰지않으면 시력이 많이 상한다고 한다. 엄청난 자외선
때문에 우유니 투어의필수품은 선글래스와 챙 넓은 모자이다.
다시 길도 없는 사막을 질주하여 도착한 곳은 소금 사막 가운데에 자리잡은 잉카와시 섬, 일명 물고기 섬 ( Isla de Pescado )이라고 이름 붙여진 깊은 바다 속의 산호초가 융기하여 형성된 섬이다.
물고기 섬은 지금은 사람이 살고있지않지만 잉카시대 코차밤바와 화산마을 간에 소금과 다른 물품을
교역하던 길의 중간 쉼 마을이었다고 한다. 전에는 소금이 중요한 교역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이
생산하지도 않고 자국내에서만 소비할 뿐이란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넓이는 약 12000 평방 킬로미터로 면적이 제주도의 6.5배에 달하고, 전라남도의 크기 정도로 소금의 양은 20억톤으로 추정된다.
( 다른 데서 보면 100억톤이라고도 하고.. 20억이 맞는지 100억이 맞는지 암튼 어마어마한 양인 것만은
틀림없다 )볼리비아 국민이 수천년을 먹을 수있는 양이란다. 물론 지금은 리튬 때문에 더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지만.
깍투스라고 불리는 선인장들이 수북이 자라있는데 이 선인장은 1년에 겨우 1센티미터 자란다고 한다.
온통 소금밭인 이곳, 땅에도 소금기 투성이 일테고 비도 거의 내리지않아 정말 척박한 조건이니 그렇게
밖엔 자라지못할테지.
그렇게 조금씩 자라난 선인장의 키가 9 미터를 훌쩍 넘는 것들이 즐비하고 12 미터가 넘는 것도 있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이 화산인데 우린 그곳을 향해 계속 여행을 할거라고 했다. 섬의 사방은 온통 소금밭이다.
섬의 정상 ( 3810 미터 )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이곳도 고도가 높은곳이라 천천히 걷는데도 숨이 찼다.
정상에 오르자 작은 제단 같은 것이 있고 윌손은 그것이 파차마마 ( 굳이 설명하자면 Mother Earth
즉 대지의 여신 정도라고 해둘까 )를 위한 제단 같은 거라고 했다.
라마의 피를 바쳐 번성을 기원했다는...
지금은 관광객들이 놓은 것인지 지폐와 동전들이 놓여 있었다. 남미 여행을 하다보면 파차마마라는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그들의 고유 신앙이고 나중 스페인이 들여온 카톨릭의 성모 마리아에게 파차마마의 모습을 찾아내 접목
시킨 듯하다.어쨌든 종교와 관계없이 그들이 그토록 존중하는 것이니 우리도 약간의 돈을 놓았다.
윌손은 매우 좋아하며 그들이 신성시하는 코카잎을 함께 바치고 자신이 두손을 모아 기도했다.
물고기 섬 정상을 오르내리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올라 ( Hola 즉 Hello )라고 인사말을 서로 건넨다.
아름다운 그렇지만 오기까지 힘들었던 여행지에 함께 와있다는 동료의식을 느끼는걸까.
나도 이 동료의식에 조그만 소리로 합류해본다. Hola !
우유니 투어의 가이드 윌손.
그의 엉터리 영어 실력에도 화가 나지않고 마냥 너그러워지게하는 매력을 가진게 우유니 사막이다.
물고기 섬은 봐도 봐도 질리지않고 마치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 시간이 정지한 듯하다.이런 섬도 개발의 바람을 타게되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내려오는 길에 미국인 (? - 내겐 나쁜 역활은 미국인에게 주는 못된 습성이 있다 )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그 청정지역에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걸 목격했다.
남의 나라라도 내집처럼 아껴주는 마음이 왜 없을까.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어떻게 그리도 태연하게
할 수 있을까.
자연의 위대함 앞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고 내자신이 한없이 작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게되던 것을...
점심식사를 하라고 운전기사 아저씨가 불렀다.
원래 우유니 투어는 사막을 다니는거라 중간에 식당이 없으니 가이드가 요리사를 태우거나 아님
운전기사와 의논해서 직접 요리를 해서 끼니를 책임지는 방식이다.
가스통까지 챙겨와서 요리해먹는 다른 팀과는 다르게 그냥 미리 먹거리를 도시락으로 싸와 펴놓고
먹는거였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돌로된 식탁에 식탁보를 깔고 돌로된 의자에 앉아 피크닉 온 기분으로 식사를 했다.
고기를 다져 작고 얇은 햄버거 패티를 여러장, 오렌지 쥬스와 토마토, 오이, 끼누아라고 그들이 자주 먹는
곡식을 밥처럼 익힌 것 ( 조와 비슷하다 )들로 소박하지만 괜찮은 식사였다.
우린 오히려 약간 짜다고 느끼는데 그들은 연신 소금을 뿌려대고있다. 게다가 마요네즈까지 뿌려서...
디저트로 오렌지도 하나씩 먹었다.
물이 귀한 지역이라 나도 물휴지로 손을 쓱쓱 닦고 먹었지만 솔직히 음식을 준비해준 운전기사의 손을
일부러 외면했다.
자주 씻을 만한 형편이 안되는 곳인데 힘든 걸 바랄 수는 없었다.
그저 못본척, 아니면 애써 보지말아야 했다.
식사 후 1시 반에 다시 차에 올라 또다시 길도 없는 소금 사막위를 질주했다.
시속 110~120 킬로미터로 달리는데 한참을 달려도 이 소금밭은 끝나지않는다.
얼마나 넓은지...
온통 하얀 소금밭 뿐인데 지루하지않고 봐도 봐도 질리지않는게 신기했다.
멀리 보이는 화산 말고는 아무것도 이정표가 없는데 우리 운전기사 아저씨는 역전의 베테랑 답게
거침없이 달려주신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있는 이화산의 이름은 오야구에이고 해발 5875 미터인 활화산으로 지금도 화산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길이 없는 이 근처에서 이정표가 되어준다.
한참을 달리니 소금은 없어지고 이젠 정말 거친 사막이 되어버린다.
사막에서 만난 포유류 비쿠냐. 사슴 비슷한 동물이다. 이곳에서 볼 수있는 포유류는 라마, 알파카, 토끼
비슷한 비스카챠 ( 꼬리가 길다 )등이다. 그나마도 매우 보기 힘들고.
세시쯤 산후안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엔 박물관이 있는데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작고 초라한 사막 마을이었다.
그대로 지나치기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아주 가끔 트럭이나 지프를 만나게 되는데 멀리서도 뿌연 먼지를 한바탕 몰고오는게 보인다.
울퉁불퉁한건 말할 것도 없고, 푹 패였다 바위가 툭 튀어나오기도하고 길이 너무 험하다.
차가 너무 심하게 울렁거려서 멀미약을 먹었다.
말 그대로 오프로드 체험을 제대로 하고있다.
이토록 황량하고 험한 사막길을 익숙하게 달리고 있는 기사 아저시가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길...핸드폰은 물론 불통이고 만약 차가 전복되기라도 한다면
혹은 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우리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기사 아저씨가 아닌가.
한참을 가자 호수가 나타났다. 플라밍고가 사는 이 호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않는다.
플라밍고들은 겁이 매우 많은 동물이라 접근이 힘들다. 너무 겁이 많아 다른 동물이랑 섞여서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고도가 높아 여타의 동물이 살아가기 힘든 이 호수가 플라밍고한테는 최적의 보금자리가
되나보다.
플라밍고는 지천으로 많았고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그후로도 3개의 라군을 더 만났는데 역시 플라밍고의 천국이었다.
라군에 사는 플랑크톤의 종류에 따라 호수의 색깔은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6시경 4000미터 가량 되는 황량한 고원지대에 홀연히 호텔이 하나 나타났다.
Hotel Tayka del Desierto.
정말 말도 안되는 곳에 있는 호텔이라 사진도 찍고 이름도 적어달라했다.
태양열로 자가발전을 하는듯 보였는데 저녁에만 더운 물을 주겠으니 빨리 샤워를 하라고 했다.
밤 10시엔 모든 전기가 나가버리는 이 호텔은 자연광을 잘 이용하도록 채광창을 만들어놓았다.
짐을 내리는데 분명 차안에 있었던 가방인데도 누런 흙먼지 투성이다. 잠깐씩 열고 닫아도 먼지가
이렇게 묻어나니...
사실 머리며 옷도 엉망이긴 했다. 입에도 모래가 씹히고.
물이 끊길까봐 서둘러 샤워를 했는데도 물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 마지막 헹굼물은 찬기운만 겨우 가신
정도였다.
저녁식사는 투숙객 모두가 함께 식당에 모여 하는데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노부부들이 세커플이나 보여
충격이었다.
저렇게 나이든 사람들도 힘든 여행을 많이 하는구나 생각하니 힘들다고 엄살피우기가 창피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약간 히피같은 차림새의 노부부 커플이 있었다. 아주 쾌활해보이는 이 부부는 고산증
증세도 없는지 큰소리로 즐기고 있었다.
정말 한참동안 안씻은 듯 보이는 어린 청년들이 서빙해주는 음식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이렇듯 높고 외진데서 잘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메뉴는 고를 수도 없다. 쌀처럼 씹히는 끼누아가 들어있는 수프에다가 빵, 라마고기 스테이크가 곁들여진
볶음밥, 꼬까차가 나왔다.
고산 증세로 머리도 어지럽고 속도 불편하여 식욕이 별로 없어 수프와 빵을 좀 먹고는 꼬까차만 두잔 가득
마셨다. 솔직히 라마고기가 달갑지 않았다. 남편은 풀풀 날리는 쌀이라도 밥이 반가운지 볶음밥을 잘
먹는 눈치였다.
밤이 되자 바람소리도 심하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매우 추웠다. 호텔 내부는 돌로 주로 되어있고 전기
난로외에 따로 난방은 없었고 그나마도 10시가 되니 그만이었다.
다행히 이불은 아주 두꺼워서 내복을 입고 자면 괜찮을 듯했다. 밤이 되면 전기가 나가니 양초가
준비되어 있었다.
꼬까차 탓에 밤에 화장실을 가는데 더듬더듬 양초를 켜들고 갔다.
정말 오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