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4- 페루 마추픽추
9월 25일 토
설레어 잠이 깼다. 얼른 씻고 가방을 정리했다. 호텔로비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마추픽추 관광을
해야하니까.
어제의 화나고 무거운 기분을 애써 떨치고 마추픽추와의 만남을 기대해본다.
마을에서 마추픽추 입구까지 버스로 10분 남짓 가니 수많은 사람이 북적대고 있다.
입장권을 내고 전문가이드를 만났다. 영어를 하는 페루 여자 가이드였다.
다행히 어제 성당 가이드보다는 발음이 약간 더 친숙했다.
1911년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하이람 빙엄이 발견한 마추픽추는 400년간 철저하게 숨겨진 도시였다.
산아래 쪽에서는 잘 보이지않아 이런 도시가 있을거라고는 상상이 안가고 또 워낙 접근이 안좋은 험한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절벽으로 가로막히고 밑에는 우르밤바 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가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발견이 안되고 있었다.
우르밤바 계곡과 우르밤바 강이 내려다 보인다
마추픽추란 원래 원주민어인 캐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란 뜻이다. 마주한 산봉우리는 와이나픽추로 젊은
봉우리를 뜻하며 와이나픽추에서 건너다보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고 하여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3박 4일동안 트래킹을 하며 반대쪽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감상한단다. 그러나 마추픽추보다도 더 높고
산세가 꽤 험하여 우리 체력 수준엔 꿈도 못꿀일이다.
물론 하루 입장객수도 제한하고 있다고 하고.
브라이언이 하루 입장객 수가 넘치지않았나 알아봐주겠다고 농담을 한다.
뒤쪽의 산이 와이나픽추. 도시의 크기가 엄청나다.
지금 역사가들은 마추픽추가 귀족계급의 교육을 담당한 도시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다.
물론 그외에도 여러 가설이 있다. 스페인의 침공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갔다는 설,
종교적인 의미로 지어진 도시라는 설 등등...
그 높은 산 속에 ( 해발 2400미터 ) 그토록 과학적이고 완벽한 공중도시를 건축할 수 있다니...
더구나 이 도시는 천연적인 돌을 깨뜨리고 다듬고 깎아 쌓아 완벽한 구도와 배수 시스템을 가진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는걸 문외한인 내가 봐도 바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아니 훌륭하다거나 완벽하다는 평범한 표현이 너무 진부하고 부족해 새삼 메마른 나의 표현력이 아쉬웠다.
각도조차도 딱딱 맞추어 반듯하게 구획지어 건축한 계획도시이다
돌을 쌓아 만든 창문인데 앞에서 보면 정확한 위치에 다 들어 맞는다
거대한 돌이면 그대로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
작은 돌들은 다듬어 쌓아 집을 만들고 신전을 짓고 궁전을 지었다. 이 모든 작업은 돌망치와 청동 끌로
이루어졌다. 석회라든가 접착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물질도 없이 오로지 돌끼리 완벽하게 끼워 맞춰 그
틈으로 종이 한장 칼날하나 들어갈 수 없게한 최고의 석재 건축기법은 지금도 풀리지않는 수수께끼이다.
바위를 최대한 생긴 모양 그대로 다듬어 이용
길에서 만난 꼬까 ( 코카 )나무
까마득한 계단식 경작지를 밑에서 본 모습
가이드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도시의 규모가 커서 당시의 인구가 어느 정도였다고 숫자를 말해
주었는데 영어로 말하는 큰 숫자에 약한 난 그만 잊어버렸다.
계단식 수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도시를 곳곳에서 관통하도록 설계되어 그 과학적인 모습 못지않게
미적으로도 아름다워 감탄을 않을 수 없다.
배수 시설도 곳곳에 이중 장치가 되어 있었다. 한번 빗물이 넘치면 그 옆에 드레인 장치를 하나 더 뚫어
놓아 다시 흘러나갈 수 있게한 정말 과학적이고 세심한 설계가 아닐 수 없다.
올해인가 작년 우기에 마추픽추 지역에 큰비가 내려 그 일대가 홍수가 나서 쑥대밭이 되었었다.
기차역도 무너지고 기차레일도 유실되었고 이재민이 많이 발생하여 꽤 오랫동안 관광을 금지할 정도로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했었다.
그러나 마추픽추는 돌하나 유실되지않고 멀쩡하게 버텨낸 놀라운 배수시설을 자랑한다.
500여년이 지난 현대의 건축으로는 버텨내지 못했다.
신성한 곳이라고 부르는 돌로 만든 조형물들이 곳곳에 있다. 마추픽추 유적지를 중심으로 사방에 있는 산들을
그대로 본따 만든 조형물인데 축소판인 듯 정말 모양이나 각도가 그대로 맞는다.
이곳에서 제사나 기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태양을 관찰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신성한 곳. 관찰하기도 하고 기원도 하고 했을것이다.
농사를 지어서 생활한 그들이므로 농사 시기나 하늘을 관찰 했을거란 설도 유력한 설의 하나이다.
하늘, 태양, 대지의 여신외에 신성시 한 것이 콘돌이다. 콘돌을 본따 만든 신전의 일부이다.
마추픽추를 열정적으로 설명해준 여자 가이드. 거의 세시간 동안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정말 열심히 설명
해주었다. 당시엔 질문도 해가며 열심히 들었는데 불행히도 내 머리엔 용량이 초과라 시간이 지나니 남은게 많지않다.
잉카인들은 이런 돌들을 다듬어 건축을 했다. 석재를 캐내고 다듬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세시간을 걸어도 제대로 다 못볼 만큼 넓은 마추픽추의 크기가 놀랍지않은가.
우리 가이드 브라이언. 한국말을 조금은 할 줄 아는 청년이다.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페루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새어머니가 한국분이라 한국에서 연세대학당을 1년간 다녔단다.
솔직히 가이드로서의 점수는 좋지않다.
착하긴한데 요령이 없고 설명도 잘 못하고 질문에 대답만 겨우 해주는데 그것도 시원찮다.
마추픽추는 잉카시대 최고의 군주인 빠차꾸텍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왕족이나 아주 높은
귀족층만 이곳에서 머물고 평민층은 이곳에 머문 흔적이 없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경작지엔 식용 작물보다는 꽃이나 조경을 위한 식물이 심어져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산 중턱에 있는 농경지에서 농사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음식물은 잉카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좁은 길을 따라
운반해온 것 같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학교로 추정되는 건물, 태양의 신전, 주택, 망을 보던 건물, 천문 관측소, 식량 저장소 등 구획을 나누어 반듯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모든 건물은 잉카시대엔 모두 지붕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지붕은 남아있지않고 지붕을 해덮을 수 있도록 고정
장치만 남아있다.
세시간동안 걸으며 숨가쁘게 설명을 해준 가이드한테 감사했다.
원래 이곳은 날씨도 변화무쌍해서 맑은 날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랬는데 우리가 간날은 아주 청명해서
주위의 경치도 잘보이는 행운도 뒤따랐다.
마추픽추는 완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미완성의 건물도 남아있고 바위와 돌을 다듬고 있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도 건설 중이었던 도시인데 스페인 식민시대 전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드러난 신비의 공중도시는 페루의 가장 큰 관광자원이 되었다.
화려하고 위대했던 잉카인의 문화유산은 이제 남루해진 후손들을 먹여살려주는 젖줄이 되어준다.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끌어모으는 힘을 가진 잉카의 저력을 후손들이 다시 보여줄 날이 있을런지 기약이 없다.
서글프고 안타깝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마추픽추를 떠나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마을로 돌아왔다.
작은 마을은 기차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수많은 관광객을 겨냥하고 음식점과 관광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많이 걸은 탓에 시장하여 맛있게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기차표를 못구해 겨우 구한 표의 시간이 많이 남아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남편과 난 중국이나 동남아의 맛사지를 기대했으나 이건 오산.
허벅지까지 열심히 오일을 발라가며 시늉은 하는데 에효 너무 못한다.
그냥 시간 때우기니까 자위하며 맛사지 집을 나서 마을 외곽의 시장 구경을 나서본다.
허접한 물건들만 꽉차있는 재래시장 분위기다. 가게는 제법 많은데 제대로된 물건은 거의 없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광장에 잉카의 시조인 망꼬까빡 동상이 있다. 마추픽추 유적지 바로 앞에 호텔이
하나 있고 레스토랑도 하나 있는데 그 가격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모든 여행객들이 다 이마을로 다시
내려와 숙식을 해결한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 저녁무렵이 되어 우린 기차역 앞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다.
그동안 고산증을 염려해 맥주 한잔도 편하게 못해봤으니 2100미터 정도에서 한잔 하자는 거였다.
카페 앞 테이블에 앉으면 지나가는 기차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페루의 맛있다는 맥주를 시켰더니 없단다. 세계 맛있는 맥주대회 2위를 했다던데... 할 수없이 다른걸로 마셨다.
기차길 바로 옆이 카페이다
마침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한컷
기차를 타고 다시 쿠스코를 향해 돌아왔다. 역시 밤기차라 밖의 경치는 전혀 볼 수 없었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오얀따이땀보 역에 내리니 또 픽업 기사가 없다.
브라이언은 놀라서 알아본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피곤과 분노에 치를 떨며 역앞에서 찬바람 속에
서있다가 남편은 화를 내며 리마 여행사 대표한테 전화를 했다.
대표의 와이프가 받아 약속한 기사가 펑크를 낸 모양이라며 브라이언이 수중에 가진 돈이 없으니
빌려주면 택시를 수배하겠다는거였다.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왔다.
쿠스코의 일정이 완전히 어그러져 그곳 근교의 다른 잉카 유적지를 못보게 된 것도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데 제시간에 픽업도 안나오는 현지 여행사의 횡포에 온몸이 떨려오도록 화가 났다.
그러나 우선 이 역앞은 벗어나야 했다.
브라이언에게 돈을 빌려주고 새벽 1시가 되서야 숙소에 겨우 들었다.
다음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아침 일찍 쿠스코 공항으로 출발했다.
브라이언은 미안해 하면서도 자기는 리마행 비행기를 7시35분에 타야한다며 먼저 가버렸다.
우리가 탈 라파스 행 비행기는 9시였다. 손님 비행기 태워주고 가이드가 움직여야 하는거 아닌가.
끝까지 기가 막히게 해준다. 일관성은 있다.
이렇게 황당한 여행사는 정말 처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