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크고작은 파티가 많다. 물론 난 미국에서 그저 아이나 돌보고 집안일만 챙겼으니 내가 어느
파티에 초대를 받은적은 없었다. 그래도 아이의 생일파티, 아이들 학교의 할로윈 파티, 학교 바베큐
파티, 교회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행사 등 조금씩 구경을 할 기회는 있었다.
여느 사교모임이나 비지니스 파티처럼 성대한 파티는 다르겠지만 사실 상상보다 시시했다. ( 직접
구경을 못해봐서 내경험상으로만 생각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일 뿐이다 )
Party : 파티, 연회, (함께 행동하는 ) 단체, 그룹, 일행, 동료, 떼, 정당 등의 사전적 의미가 있다.
내가 경험한 파티는 연회의 의미에 충실한, 영화에서 보던 말 그대로의 파티가 아니고 동료들이 같이
떼로 소박하고 간단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담소하다 헤어지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파티들이었다.
하긴 아는 사람이라고는 교회분들과 아이 친구 엄마 ( 모두 다 한국인들 )가 전부인 내가 어느 인맥을
통해 멋진 파티엘 참석해보겠는가. 혹시 그런 파티에 초대되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진들 어깨끈이 없는
멋진 실크 이브닝 드레스도 없고, 또 그런 드레스를 소화할만한 몸매도 당연 내겐 없다. 게다가 주눅
들지않고 사람들과 세련된 매너로 담소를 나눌만한 사교성은 절대로 없으니 시시하다고 실망할 자격
조차 없는건 아닌지.
어쨌든...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접한건 아이 학교의 바베큐 파티였다. 초대 안내문을 받고 정말 숯불에 지글
지글 구워낸 스테이크를 상상한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하긴 재정이 시원찮은 조그만 공립학교에서
훌륭한 스테이크를 구워 학부모들을 대접하리라고 상상한 내가 한심한 망상주의자이다.
자원 봉사자들이 얇은 햄버거 패티 하나씩 구워 싸구려 빵에 얹어주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게 전부였다. 하하하...
그나마 제일 신기하고 설레던게 할로윈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당시 내겐
생소한 체험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앞에 Jack -O-lantern 이라 불리는 호박등을 놓아두고
갖가지 할로윈 장식을 현관이나 정원에 장식해놓는다. 할로윈인 10월 31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쇼핑
몰에서는 각종 할로윈 의상과 분장도구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아이 학교에서도 할로윈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할로윈 코스튬을 준비했다.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캐릭터일수록 가격
은 많이 바싸졌다. 하루만 입고 버리는건데 아까워서 평범한걸로 구입했지만 아이는 처음 입어보는
드레스에 눈이 팔려 전혀 개의치않았다. 원래 이런데에 무모하게 욕심내고 떼를 쓰는 성격이 아닌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보니 여자아이들은 알라딘의 재스민, 신데렐라 등 디즈니 만화
주인공 캐릭터가 많았고 남자아이들은 파워레인저나 배트맨 혹은 괴기 영화의 주인공이 인기였다.
그 다음해에도 난 저렴하게 딸아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브라이드로, 아들녀석은 지가 좋아
하는 동물 캐릭터로 꾸며주었다.
할로윈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바구니를 들고 이웃집으로 사탕을 얻으러 돌아다닌다. 아이들이 찾아와
" Trick or Treat " 하고 외쳐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준비해둔 사탕과 쵸컬릿 등을 한웅큼씩
나누어 주었다. 신이 나서 바구니 한가득 사탕을 얻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같이 즐거워
했던 추억이 있다.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학교에서는 엄마한테 컵케익을 준비하도록 연락을 했다. 반 아이들한테 큰
케익을 나누어 주는것이 불편하니 개별적으로 먹을 수 있는 작은 컵케익을 선호하는 것이다.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친구들의 축하도 받는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생일을 지나치지만
가정에서는 사뭇 다르다.
형편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대개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해주는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케익을 준비하고, 친구들
한테 나누어줄 구디백을 장만한다. 성대하게 치뤄주는 부모들은 삐에로 등을 불러 이벤트를 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당이나 오락실, 수영장 등에서도 파티를 열어준다.
IMF 로 고통받고 있는 우린 친한 친구들만 불러 간단히 음식을 해주고 놀게 해주었다. 물론 저렴한
구디백 정도는 만들어 주었고.
미국 아이의 생일 파티를 구경해볼 찬스가 생겨 잔뜩 기대가 생겼다.
남편 실험실의 보스인 이바쉬키프 교수의 아이 생일이라고 초대장을 받았는데 함께 가자고 해서 작은
선물을 마련해 맨하튼의 집을 방문했다. 아이의 첫돐 생일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아기들의 돌잔치 만큼은 아니라도 초대장까지 받았으니 풍족한 잔치 음식을 기대했던 난 또
한번 실망을 하고야 말았다. 과자 몇가지와 치즈 몇조각, 쥬스와 탄산 음료 두어가지, 과일 약간이
다였고 생일케익만 잘라서 한쪽씩 돌리고는 그저 여기저기서 얘기들만 하는 것이 아닌가.
워낙 숫기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영어도 딸리는 난 애매한 미소만 띄고 있다 남편보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밥이나 먹자고 재촉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난 남편한테 실험실 사람들한테 음식을 좀 해가서 대접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했더니 남편이 반겼다. 파티 음식을 만들어주는 델리 샵에 김밥과 만두를 넉넉히 주문을 하고 난
샌드위치를 만들어 과일과 음료와 함께 실험실로 가져가 이별파티를 했다. 손크게 준비한 음식에
사람들이 조금 놀란듯 했고 기쁘게 음식을 즐기는 모습에 흐뭇하고 뿌듯했다. 1년반동안 남편이 실험
하고 무사히 좋은 논문을 마칠수 있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사람들한테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어서
나역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