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갈 때 원래 잔걱정이 많은 난 미리 책도 좀 읽고 내딴에는 마음의 준비를 해가려 했다.
영어야 어차피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니 여러가지 정보를 알고 가면 덜 당황하겠다 싶어서였다.
처음 우리끼리 슈퍼마켓에 장보러 간날 캐시어가 뭐라고 묻는데 잘은 안들리지만 플라스틱 어쩌구
했다. 그게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얘긴가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고만 있으니 그녀는 한번 더 얘기해
보고는 고개를 젓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봉투를 내밀었다. 알고보니 우린 흔히 비닐이라 부르는 비닐
봉투를 그들은 플라스틱 백이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빠른 말투로 페이퍼 or 플라스틱 하고 종이
봉투를 줄까 비닐 봉투를 줄까 묻는걸 못알아들은 것이다. 뭐 알고나면 참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걸
못알아듣고 헤매는 내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모를 수도 있지 우린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잖아 하고 마음을 추스려보지만 이상하게 영어 앞에선 자꾸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낀다.
미국에서 쇼핑하면서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반품이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상품이 정해진 기간내이라면 반품이 Free 다. 물건을 사고서 집에 가져갔다가 마음이
변하면 다시 들고가 " I don,t want this " 하면 된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대신 영수증은
꼭 챙겨가야 한다. 단적인 예로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슈퍼볼 시즌의 막바지가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TV 를 많이 구매했다가 결승전이 끝나면 줄줄이 반품을 한단다. 기가 막혀서...소비자가 왕이라는
명제가 제대로 참명제인 나라이다.
우린 그렇게까지는 낯이 뜨거워 못하지만 소비자의 권리를 누려볼 기회는 있었다. 처음 구입했던
청소기가 말썽을 부려 잘 보관해 두었던 영수증과 포장박스를 들고가 얘기하니 반품사유를 말하라
하고 영수증에 싸인만 하라고 하고선 바로 환불해주어서 더 좋은 제품으로 재구입할 수 있었다.
크기가 큰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을 구입할 때 당황했던 것은 운송료였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모든
제품을 구입만 하면 배달은 무료로 해주는데 이나라에선 배달료가 무조건 따로 책정이 되는지라 물건을
구입할 때 항상 배달료를 감안해야했다.
처음 구입한 소니 32 인치 TV도 무료로 배달해준다는 한인 마켓에서 구입을 결정했고 가구도 거의
무료 배달해주는 한인 가구점에서 구입했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보니 TV는 가격이 뻔했지만 가구는
배달료 따로 받지않는 말에 넘어가 그리 꼼꼼이 따지지않고 샀던 것 같다.
미국에서 처음 가게된 코스트코 홀세일은 참으로 놀라운 규모의 마켓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주차장
에 가득 서있는 수백여대의 자동차들과 줄줄이 끌고나오는 카트에 가득 실려있는 식품과 생필품들에
처음엔 기가 질렸었다. 장사해도 될만큼 산더미같이 쌓아서 끌고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덩치만큼 참
많이 먹고 사는구나...하고 놀라워했지만 상품들이 워낙 판매 단위가 큰지라 나도 곧 커다란 카트를
끄는 사람들 대열에 끼게 되었다.
물론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코스트코가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곳이지만 벌써 15년전 일이니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처음 미국에서 몰 ( Mall )을 갔을 때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백화점 크기의 Department
Store 들이 보통 2~3개 씩 연결되어있고 거기에 그보다 더 큰 규모의 건물 안에 상점들이 늘어서있는
거대한 규모의 몰은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실내에서 길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한 정도로 규모도 크고 상점
들의 숫자와 종류도 다양했다. 쇼핑을 아주 즐기는 큰애 친구 엄마를 따라 몰에 구경가면 쇼핑도 하고
푸드코트에서 점심도 사먹고 하루 시간보내기에 그만이었다.
내가 살던 뉴저지 포트리에서 뉴욕주 북쪽으로 한시간 정도 가면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울렛인
우드버리 ( Woodbury Common Premium Outlet ) 가 있다. 이곳에 가면 여러번 놀라지않을 수
없는데, 우선 그 규모에 제일 먼저 놀라게 된다. 한바퀴 돌려면 너무 넓어서 걸어서 돌기에 벅찬
크기이다. 매장지도를 보며 꼭 가보고 싶은 상점만 들러야지 어리바리 돌아다니면 하루 온종일 걸려도
다 돌아보기에 역부족이다. 늘 사람이 많은 곳이라 주차하기도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차로 이동하며
필요한 매장만 잘 찾아 다니는 쇼핑의 고수들도 물론 있다.
둘째 날짜를 잘 선택해서 가면 세일 폭이 커서 놀라는 경우이다. 난 워낙 명품과 무관한 사람인
데다 가격도 잘 모르고 브랜드 이름도 잘 몰라 별 해당 사항이 없긴 하지만 싼 가격에 명품들을 충동
구매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다음으로는 수많은 한국인들에 놀라게 된다. 한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브랜드인 버버리나 폴로 등등
이런데에 가보면 여기저기 한국말이 넘쳐난다. 심지어는 이런 매장엔 꼭 한국인 점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아...위대한 한국인들....
연말이 되면 각 쇼핑몰에선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 물론 연말이 아니어도 세일이 있긴 해서 계절이
바뀔 때 파이널 세일 ( Final Sale )을 실시해 교환이나 환불이 안되는 대신 아주 큰 폭으로 가격을
깎아준다. 특히 크리스마스 다음날이 되면 박싱데이 ( Boxing Day ) 라고 해서 많은 상품을 싼 가격
으로 살 수 있다.
내가 살던 뉴저지는 의류에 대한 텍스가 없어 이웃 뉴욕주 사람들이 옷을 쇼핑할 때 원정오는 사람
들이 많았다. 값나가는 의복이라면 텍스를 절약하는 것도 꽤 이득이 될테니까.
그러나 뉴저지 주는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내가 살던 버겐 카운티 ( Bergen County )는
뉴저지 주의 북부로 비교적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부촌에 속했는데 유태인들이 주류를 이루어 유태인들의
입김이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어서 일요일이면 슈퍼마켓을 제외한 백화점이나 쇼핑몰들이
영업을 안하는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꼭 일요일에 쇼핑을 해야하면 오히려 뉴욕주로 건너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도 역시 자주 가게 되는곳은 한인 마켓이었다. 쌀, 김치, 반찬거리들이 필요하니 한인 마켓
두번이면 미국 마켓 한번 꼴로 간 것 같다. 뉴저지와 뉴욕 ( 특히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플러싱 )엔
거대한 한인마켓이 있어서 정말 없는 물건이 없어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한국에서 즐겨
먹던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빼고는 한국의 그저그런 규모의 슈퍼마켓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물건이 다양하고 많았다. 특히 뉴저지주는 토양이 비옥하고 농작물이 잘되어 Garden State 라는
별명이 붙어있는데다 한국과 기후조건도 꽤 유사하여 배추나 고추 등 우리들이 즐겨먹는 채소류도 질이
좋고 흔했다. 뉴욕과 이웃해있으니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상품도 구하기 쉽고 신선하며 가격도 저렴해서
살기에 좋았다. 내륙 오지에 살았다면 한국식품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텐데...
한인 마켓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또 있다. 바로 스피드 !!
서양인들은 셈이 느리고 원래 동작도 느려서 쇼핑한 후 계산대에서 기다리고 계산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동전을 없애려고 동전을 주면 그걸 들고 어쩔줄 몰라하며 시간은 무한정
더 걸리게 된다. 그러나 한인 마켓에 가면 유능한 한인 캐셔들이 눈부신 속도를 자랑하며 척척
수많은 고객들을 요리해낸다. 미국 마켓에서 속이 터져 울화병이 날 지경이던 가슴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빨리빨리병이 어쩌고하며 참을성있는 그들의 질서의식이 부럽다고 했던
내말은 순간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버린다...으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