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정착이 조금씩 되어가며 큰아이 학교를 보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던 동네의 공립
학교는 Fort Lee Elementry School Number 3 로 집에서 걸으면 20분 정도 이상 걸리고 차로
가면 5분이면 닿았다. 말이 학교이지 우리 아이는 만 5세가 갓 지난 어린아이였으므로 우리나라로
치면 유치원에 해당하는 킨더가튼이었다. 우린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할 때에도 아이가 너무
어려 영어는 전혀 가르치지않고 한국에 다시 귀국할게 걱정이 되어 오히려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을
어느정도 떼는게 좋겠다 싶어 벽에 한글 카드를 붙이기도 하며 두어달 한글 가르치기에 몰두하고
영어는 아예 알파벳도 모르는채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갔으므로 막상 학교에 보내려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학교에 아이를 데려가니 영어는 한마디도 모르는 아이가 낯선 환경에 겁을 먹고 학교에 들어가기
를 완강히 거부했다.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는 아이를 보며 난감해 하자 학교의 교장이 우리보고 걱정
말고 아이를 맡겨두라고 했다. 다음날도 걱정하며 아이를 데려가니 아이는 저도 모르게 바지에 실례를
했다. 오죽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지에 오줌까지 싸버릴까 싶어 안쓰러웠지만 사람좋은 미소를 보이며
교장은 걱정말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정말 몇일이 안되어 아이는 학교를 즐겁게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마디씩 영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ESL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우린 영어를 한마디도 가르치지않고 데려왔다고 조금 창피한듯 얘기했더니
ESL 선생님은 오히려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말그대로 영어는 ESL 즉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결국 제 2 언어일뿐 이 아이의 모국어는 한국어이고 아직 어린 나이라 모국어를
확실하게 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섣불리 외국어를 잘못 배우면 모국어도 외국어도 모두 서툰 아이가
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영어를 안가르치고 한글을 가르친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받고나니
일부러 무얼 알아서 그런건 아니고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살아가야할 아이라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한 일인데 잘한것 같아 뿌듯했다. 반년정도 지나자 아이가 언어적 감각이 아주
좋아 ESL 수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잘 따라한다고 그냥 정규수업을 하라고 해주니 날아갈 듯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 아이보다 훨씬 먼저 미국에 온 아이들도 ESL 수업을 계속 받고 오래 하는 눈치던데 아이가 기특
하고 혹시 내아이가 영재가 아닐까하는 아이가 어렸을적 대부분의 부모가 하는 행복한 착각에도
빠져봤다 ㅎㅎ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참여하는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었다.
말이 바베큐 파티이지 그냥 운동장에서 햄버거 하나씩 숯불에 구워주고 음악을 틀어주고 댄스도 즐기
게 하는 소박한 동네잔치 수준이지만 학부모들과 아이들, 교사들이 격의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지않으려 하던 아이가 금새 운동장에서 이렇게 즐겁게 뛰놀다니...
운동장에서 열린 댄스파티에 작은 녀석도 함께 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미세스 파인맨이라는 이름의 백인 선생님이었는데 공정하고 현명하고 친절한 분
이었다. 아이들을 참으로 예뻐하시고 엄격할 때는 엄격하게, 엄마같이 인자하게 보살펴주실 때는 또
인자한 분이었다. 킨더가튼을 끝내고 1학년이 되었을 때 규모가 작은 학교라서 그런지 파인맨 선생님
이 또 담임을 맡게되어 아주 기뻤었다.
담임 선생님 미세스 파인맨과
보조 선생님과 ( 아쉽고 죄송하게도 이분의 성함이 생각나지않는다 )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 ( Halloween Day ) 로 학교 선생님들도 분장을 하기도 하고 온 학교의 아이
들이 할로윈 분장을 하고 등교하여 학교 주변을 행진하며 즐겼다. 한국에선 해보지않던 풍습이라 신기
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옷을 입으니 즐거워했다. 교실에서도 사탕이나
컵케익 등을 나누어 먹으며 파티를 즐겼다.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든지 견학을 가면 철저하게 부모의 동의서를 받고 위급상황이 있을때 연락처를
몇개씩 적어내게 하고 주치의도 정해서 적게 되어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데려갈 병원과
연락처 , 그리고 병원에 데려가도 좋다는 동의서....정말 싸인해야할 동의서가 어찌나 많은지.
하교시 아이를 픽업할 때도 담임 선생님과 면담해서 얼굴을 아는 부모가 아니면 절대로 아이를 내어
주지 않는다. 할머니나 엄마의 친구, 기타 아이가 아는 사람이라도 부모가 아니면 절대로 아이를
데려올 수 없다. 너무 철저해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 혹시 모를
유괴라든지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으니 확실히 아동에 대한 법률이나 사회적 인식이 선진화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학교에서 단체로 간 농장 견학에서 말타기 체험을 해봄
시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에서 발레 수업을 듣다
학교 생일 파티에서. 생일인 딸아이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다
일년에 한번 International Day 에는 여러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각자 전통의상을 입기도 하고 민요
를 부르거나 무용등을 선보이는 행사를 한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오나가나 극성 (?)이어서 엄마들까지
함께 한복을 입고 아이들과 아리랑을 연습해서 공연을 했다. 난 작은 애까지 한복을 입혀서 학교에
데려갔다. 공연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한복이 자랑스럽다. 해외로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니까...
킨더가튼을 졸업할 때에도 강당에서 작은 공연과 기념식을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해주시던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와
( 우린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주 작은 마음의 선물을 드렸다 )
아이의 반에는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는 아이가 있어 보조 교사가 필요했다. 전적으로 불편한
아이를 돌봐주고 케어해주는 교사를 지원하는 학교 시스템이 부러웠다. 공립학교이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국가적 지원과 관심 또한 선진국답다 느껴졌다. 더구나 선생님들은 그 어린
아이들에게 불편한 아이를 돕는게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는걸 자연스럽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서로 앞다투어 그아이를 도와주고 싶어하고 칭찬받고 자부심을 느끼고...이 모든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시되는...
이 보조 선생님도 아이들을 참으로 이뻐해주셨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인사드리고 헤어지던 마지막날 이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끌어안고 섭섭해서 눈물을 흘린 일이었다.
동양의 작은 아이한테 그리 정을 주고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서양인 선생님의 모습이
솔직히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아이를 아껴준 마음도 고맙고 눈물과 정은 한국인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던 내 선입견이 조금 무너지기도 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일이 많아졌다. 왜그리 전달사항이 많고 써야할 각종 동의서들도 많은건지...
거의 매일 아이는 학교에서 부모한테 보내는 안내문을 들고왔다.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열심히 읽어야
하는 안내문들은 대개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런치 메뉴나 학교 소식 등등 그리 중요한건 아니었지만
예방주사 확인서나 소풍 동의서, 주치의나 비상 연락처 등 중요하고 부모의 싸인이 꼭 필요한 것도
자주 나왔다. 간식에 대한 안내문도 기억에 남았는데 땅콩 종류가 들어있는 간식류는 가능한 학교에
보내지 말고 아이한테도 함부로 친구의 간식을 나누어 먹지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땅콩 알레
르기를 가진 아이들이 내용을 잘 모르고 나누어 먹고 위험했던 일이 종종 있었나보다. 영어로 되어있는
각종 안내문을 열심히 읽고 체크하고 싸인하고...힘이 들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안전에
대한 학교의 태도에 신뢰가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한번은 아이가 넘어져 다리 근처에 멍이 들었는데 담임 선생이 아이한테 꼬치꼬치 묻는걸 보고 기분이
나쁘면서도 아동 폭력에 대해 학교에서도 열심히 감독하는구나 하고 한편 부럽기도 했다. 사랑받고
자라는 아이들도 많지만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의외로 많은데 학교에서라도 관심을 갖고
지켜주는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학교 생활이나 사회의 시스템이 확실히 아이들한텐 잘 되어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미국엔 어린이날이 없다. 일년 365일이 늘 어린이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