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8 - 우유니투어 둘째날, 칠레 국경
9월29일 수
아직 캄캄한데 눈이 떠졌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잤으므로 기분은 좋았다.
밤버스에 시달리고 오프로드에 시달리고 ...정말 피곤했으니까.
화장실에 가있는데 6시가 되자 전기가 들어왔다. 새삼 전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뭐든 부족해봐야 그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아침엔 더운물을 안준다더니 물이 너무 얼음장 같이 차서 양치도 힘들었다. 별수없이 생수로 양치를
했다. 세수는 고양이 생수.
연일 강력한 썬블럭을 하도 덕지덕지 덧발라대고, 고산지대의 강한 햇빛과 거센 모래바람,
매일 입이 말라 자연히 물을 찾게되는 살인적으로 건조한 기후 탓에 피부는 엉망이 되어 로션을 바르면
얼굴이 마구 따끔거린다. 화장이 안먹고 들뜬지는 여러날 되었고 이젠 거울 보기도 싫다.
자외선은 피부 노화의 주범이라는데 너무 강한 자외선과 건조한 바람 속에 몇날을 보내고 있는지...
그나마 이젠 제대로 씻지도 못하니.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주름이 100개 이상 생겼대도 할 수 없고 뿌듯하기까지한 난 여자도 아닌건가.
배낭여행자 숙소에선 저녁에도 더운물을 주지않아 샤워도 못한다더니...그제서야 더러워보이는 현지인들에
대한 이해심이 밀려왔다.
더운물은 커녕 마실 찬물도 너무 귀한데 뭐 자주 씻을 수 있겠는가. 하루만에 나도 웬만한건 물휴지로
쓱쓱 해결해버리는 모드로 전환해버렸다.
이래서 사막 여행엔 물휴지 준비가 필수다.
어디선가 인디오들이 평생 세번 씻는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사실인진 확인할 수 없지만 태어나서 한번, 결혼할 때 한번, 죽고나서 한번 씻는다고한다.
물도 귀하고 또 강한 자외선과 너무 건조한 기후에선 자주 안씻어야 오히려 피부가 견딜 수 있다고...
뭐 변명같이 들리기도하고 그럴듯하기도 하다.
아침식사는 빵과 차, 시리얼,비스켓, 쥬스로 간단하다. 윌손과 기사 아저씨는 가루 우유를 뜨거운 물에
타서 시리얼을 말아먹었다.
7시에 출발. 갈길이 머니 일찍 나섰다.
또 황량한 고원의 사막지대의 연속이다. 페루의 남부 티티카카 호수 근처부터 시작해 볼리비아 서부,
아르헨티나의 북서부에 이르는 고원지대를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라고 한다.
바깥으로 보이는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이채롭다.
돌나무 ( Arbre de pierda ) 라고 이름 붙여진 기묘한 바위. 유명한 바위라 여기저기 사진에 잘 등장한다.
사막에 부는 거센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깎여나가 각종 신기한 모양들이 생성되어있었다.
잠깐 사진을 찍는데도 바람이 너무 차고 세서 오랫동안 경치를 즐길 수 없어 아쉬웠다.
나중에야 이곳의 지명을 알았는데 여긴 실로리 사막이라고 했다. 우유니 남서쪽의 사막지대였다.
난 여태 사막과 고산지대를 함께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 둘의 조합은 내 머릿속엔 한꺼번에 떠올리기 힘든 이미지였다가 이번에 그 고정관념이 확실하게 깨졌다.
고산지대에 있는 사막, 그것도 아주 넓은 ...
사막길을 한참 더 달리니 또 호수가 나타났다.
라구나 꼴로라다 ( Laguna Cololada 해발 3850 미터 )는 호수 주변이 온통 붉은 빛인 특이한
지형이었다. 광물질이 많이 섞여서 이런 색이 나온다는데 보기엔 아름답지만 소금기와 광물질 때문에
나무들이 전혀 자라지 못하고 역시 플라밍고만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하다 또 이동 이번엔 간헐천이다.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달리는 사륜구동 짚
검문소였던 것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쳤다
그 오지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덩그라니 있었다
솔 데 마냐냐 ( Sol de man~ana 아침의 태양이라는 뜻 )으로 이동하는 길은 고도가 더 높아져
무려 4870 미터나 되는 간헐천에 도착하니 어질어질했다.
이른 아침엔 몇미터씩 높이 솟구친다는 이 간헐천은 미국 옐로스톤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계란 썩는 듯한 유황냄새가 진동을 하고, 시야가 흐려지도록 여기저기 김이 펄펄 나고, 진흙이 부글부글
끓고... 활화산 지대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신기한 체험이다.
지구가 살아있다는 느낌...
부글부글 끓고있는 진흙
옐로스톤에선 훨씬 넓은 지역에서 다양하게 볼 수있지만 절대로 접근을 못하게 모조리 울타리로 막아놓은
미국식 호들갑주의 때문에 이렇듯 손닿을 듯한 현장감은 덜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접근이 가능해서인지
간헐천에 빠져 죽은 사람이 종종 보고된다고 한다.
물에 녹아있는 광물 때문에 땅이나 바위들의 색에 붉은 빛이 감돈다.
간헐천을 구경하고 좀더 달리니 노천온천 ( 떼르마스 데 찰비리 Termas de Chalviri )이 나왔다.
정말 아담한 사이즈였다.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고 나오는 여러명의 서양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타올로 감싸고 탈의실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귀찮지도 않나 생각했다가 엊저녁에 샤워를 못한 배낭 여행자들일 수 있겠다 생각이 났다.
손을 담그어보니 물이 따뜻했다. 그러나 공기가 너무 차가워 나로서는 도저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날 것
같았다.
바람이 너무 불어 모자를 잡지않으면 날아가버린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밖의 경치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설치미술 같이 초현실적이고 멋있어서
달리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계곡을 지나갔다.
하늘이 그냥 파랗다고 하기엔 아쉬울 만큼 깊은 색이다.
사막의 하늘은 이상하게 더 컸다. 가까워서일까 ( 높은 곳이니 ) 아님 지상의 모습도 하늘을 닮아서
더 커보이는걸까.
지평선이나 산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모습이 실제가 아니고 그림인 듯 비현실적이기까지하다.
건기라고는 하지만 건기라는 단어에 정말 충실하게 구름 한 점 볼 수 없는 맑은 하늘이다.
그러고보면 지대가 높을수록 구름도 거의 없고 하늘이 더 파랗게 보였다.
구름이라든가 공해라든가 시야를 방해하는 것들이 없어서일까 아님 희박해진 산소 때문에 가시광선의
투과력이 좋아져서?
푸핫. 이과출신의 얕은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지만 설령 내 착각이고 착시라 해도 내게는
확실히 더 파랗고 더 넓은 하늘이다.
티티카카에서도, 마추픽추에서도, 라파스, 우유니에서도, 여기에서도 그리고 나중 아따카마에서도 그랬다.
달리 계곡
고산증 증세가 점점 심해져 경치를 감상하기도 힘들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호수 라구나 베르데 ( Laguna Verde )는 해발 4320 미터의 고산
지대에 있는 호수로 멀리 칠레의 화산이 보이는 녹색의 아름다운 호수였지만 두통이 점점 심해져 구경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차창을 잠시 내리고 사진만 간신히 두어장 찍고 말았다.
웬만하면 내려서 볼텐데 정말 힘들었다.
11시 반이 조금 넘어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작은 규모의 숙소 같은 곳에 들렀다.바람이 너무 심해 도저히
야외에선 식사가 불가능하므로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볶음밥, 오이, 토마토, 참치캔 딴것, 쥬스와 사과가 메뉴였다.
윌손과 아저씨는 또 소금과 마요네즈를 뿌려서 먹는다.
난 두통과 울렁거림 등 고산증 증세가 너무 심해져 쥬스와 오이만 조금 건드리다 포기했다.
내가 식사를 못한다는건 심각한 증세이긴 하다.ㅎㅎ
다시 차는 달리고 12시 반쯤 되자 허름한 건물이 나타났다.볼리비아 국기가 꽂혀있는 이곳은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였다.
간단히 입국시 받았던 서류를 내고는 볼리비아와는 바이바이다.
바로 그때 멀리서 미니트럭 한대가 쏜살 같이 달려와 내이름을 확인했다.어떻게 이렇게 귀신 같이 시간을 맞추는지 정말 희한했다.
국경을 넘어 칠레쪽으로는 볼리비아 차가 갈 수 없어 차를 바꿔야했다. 짐을 옮겨 싣고 윌손과 기사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헤어지며 팁을 주었다.
특히 운전기사 아저씨한테는 수중에 남아있던 볼리비아 동전까지도 몽땅 털어드리고 쵸콜릿이나 간식
남은것까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렸다.
칠레에서 온 그 운전기사는 자기 이름은 루벤 ( Ruben )이라고 했고 우리가 스페인어를 못한다고하자
" Welcome to Chile " 라고 하더니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어깨를 들썩이는데 행동이 매우 과장
되고 껄렁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에 허름한 건물 하나 지어놓고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라 하더니
그냥 이정표가 하나 나와 칠레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로 가는 방향 표시만 되어있다.
이게 국경이라니... 뭔가 좀 허무했다.
너무 허접한 볼리비아 측의 출입국 사무소
입국 전에는 그렇게도 까다롭게 굴더니만 나가는 길은 이리 허술하다.
암튼 칠레로 가는 방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포장도로가 나왔다.
깨끗한 포장도로에 들어서자 차도 흔들리지않고 뿌연 먼지바람도 없어지고...
한순간에 다른 세상에 들어선게 마술같았다.
국력의 차이가 여실히 들어나는게 분명 이곳도 사막지대인데 분위기는 너무 달랐다.
마음이 짠했다.
지난 사흘 반동안 볼리비아에 대해 정이 들었나보다. 가장 가난하고 약한 나라라서 생기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 만은 아닌듯하다.
사람들이 더 순박하고 착하다고 느낀건 그냥 내 느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파스의 가이드 아저씨, 열심히 뛰어 다니며 택시 잡는걸 도와주던 호텔 직원, 말도 안통하는데
배시시 웃으며 값을 깎아주던 가게 아줌마, 말도 안통하는 뜨내기 손님인 내게 세탁법을 열심히 설명
하던 아저씨, 수줍게 웃던 우유니 기사 아저씨, 되는대로 자기 아는 것만 얘기하며 자꾸 일본에 대해
묻던 머리나쁜 가이드 윌손이 떠오르며 뭔지 모르게 안타깝다.
빨리 가난을 딛고 일어섰으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남의 나라에 뺏기지말고 지켜내는 힘이 어서
생겼으면 해본다.
볼리비아 국경에서 칠레로 들어서 산페드로( San Pedro ) 마을까지 오는길은 40여분 이상을 급하게
내려달리는 내리막길이었다.
1,000미터가 훨씬 넘는 높이의 산을 40여분만에 내려왔으니 정말 긴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중간에 길옆에 야생 라마 한마리가 보여 사진을 찍었다.
라마 뒤의 하늘이 너무 파랗게 보여 비현실적이기까지하다.
산페드로 마을에 들어서자 칠레 국경 출입국사무소가 나왔다. 짐을 모두 일일이 다 뒤져서 고기나 과일
등 음식 같은 것은 일절 반입이 금지되고 꼬까잎등 소지품 검사가 철저하고 까다롭다고 소문이 나있는
입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하도 까다롭다해서 긴장을 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내주어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소지품에 대해 몇마디 묻더니 형식적으로 대충 검사하고 세관신고서만 제출했다.
마을에 있는 여행사로 가서 오후에 있을 사막투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듣고 시간약속을 하고
호텔 체크인을 했다.
산페드로마을은 칠레 아따카마 사막 ( 해발 2600 미터 )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사막을 관광하려는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 여행사들이 들어서있다.
진흙 벽돌로 지어진 호텔
우리가 묵을 호텔은 Casa de Don Tomas 라는 호텔로 높은 진흙 벽돌담장들이 가리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돌아 들어가니 넓직한 마당과 이름모를 꽃들이 예쁘게 핀 정원, 야외수영장과 곳곳에 나직한
그네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로비의 프론트데스크 직원은 키가 크고 백인으로 보이는 외모를 지닌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인데
아침식사 시간을 알려주길래 비행기 시간 때문에 못먹겠다고 하자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친절하게
얘기해주었다.
페루나 볼리비아와 같은 스페인어 권인데 이곳 칠레는 여러모로 많이 달랐다.
우선 사람들의 키나 피부색이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만만하게 작았던 페루, 볼리비아 사람들과 달리
키가 크고 피부색도 백인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다.
독일 이민자가 많아서 그런건지 유난히 칠레인들은 상대적으로 키 큰 사람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페루나 볼리비아 처럼 메스티조 같은 혼혈인종도 있지만 이민자가 유난히 많아
백인으로 보이는사람이 더 많아 보인 것이었다.
이민자를 많이 받아 들였어도 이 넓은 땅에 인구가 1,800만 밖엔 안된다고 한다.
영어도 훨씬 잘 통한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이곳이 꽤 유명한 관광지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짐을 풀고 좀 쉬었다가 아따카마 사막의 마지막 하일라이트인 달의 계곡 투어를 가기로 했다.